신선이 놀던 곳

괴산 남군자산의 선유동문(仙遊洞門)

이제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든 듯 두터운 생각나는 날이다. 계곡을 보고 싶어서 괴산을 찾았건만 상당히 쌀쌀해진 날씨가 가볍게 입고 나들이를 나선 이날을 아쉽게만 만들었다. 신선이 내려와서 놀던 곳이라고 해서 얼마나 멋진 곳일까 궁금해하기도 했었다. 조선시대 퇴계 이황이 7 송정(현 송면리 송정 부락)에 있는 함평 이 씨 댁을 찾아갔다가 산과 물, 바위, 노송 등이 잘 어우러진 절묘한 경치에 반하여, 9달을 돌아다니며 9곡의 이름을 지어 새겼다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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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달을 쉴 수 있는 그 여유가 살짝 부럽기는 하지만 입구에서부터 옥같은 색의 물이 홀리듯이 사람을 끌여들였다. 이곳에서 목욕을 하면 하루쯤은 수명이 연장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신선이 내려와 노닐던 곳이라는 선유동문을 비롯해 경천벽, 학소암, 연단로, 와룡폭, 난가대, 기국암, 구암, 은선암이 9곡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 선유구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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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간 지인이 어디를 가냐고 물어서 선유동구곡이라고 말해주었더니 지난번에 갔다 온 화양구곡과 같은 곳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대한민국의 계곡 명승지 대부분의 명소는 9곡이라고 부르는 곳이 많다. 많지도 적지도 않지만 볼만한 계곡이 아홉굽이를 이루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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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은 압권을 써낸 장원급제자가 주상의 빛 나는 용안을 쳐다보는 것을 의미한다. 보긴 보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빛이 난다는 의미가 바로 관광(觀光)이다. 괴산과 문경은 초시에 합격한 과거시험객들은 벼슬길을 여는 ‘복시’를 보러 한양으로 가기 위해 괴산 조령(鳥嶺)을 거치면서 꼭 지나쳐가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양길에 장원급제를 생각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낙방하여 귀향하더라도 관광했다고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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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해서 주상의 얼굴은 보지 못했어도 괴산 절경을 감상하고 온 것만으로도 관광했다고 하니 오늘날의 관광을 한다는 것은 괴산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우암 송시열이 이 부근에서 힐링하면서 머물렀던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며 퇴계 이황은 9달 동안 이곳에서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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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선유와 화양동을 ‘금강산 남쪽 으뜸가는 산수’라고 적었다고 하니 혼을 빼고 시간이 가는 줄 몰랐던 것이 과언은 아닌 듯하다. 위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 맑기가 그지없다. 계곡은 조약돌이 훤히 비치는 옥수(玉水)로 가득하며 물길은 고요하고 물속 풍경이 또렷한 곳에 물 수제비도 떠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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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두터운 옷을 입고 왔으면 조금 더 머물며 거닐고 올라가려고 했지만 날이 너무나 춥다. 신선은 추위를 타지 않으니 얼마든지 머무를 수 있겠지만 필자는 사람이라 추위를 탄다. 한 여름에도 좋지만 가을이나 겨울에도 걸어볼 만한 여행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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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가을이면 늘 고민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선택지가 좁혀진 것도 사실이다. 수련을 통해 만들어진 신선은 영생을 얻고 평범한 사람의 영혼이 감히 접근할 수도 없는 천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믿었다. 입구의 돌에 새겨진 선유동문이라는 선명한 글자가 신선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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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생각해본다. 왜 신선들의 시간은 인간계보다 빨리 지났던 것일까. 그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기 때문에 시간이 가는 것을 몰랐던 것인지 모르지만 그들의 세상은 마치 인터스텔라의 밀러행성에서 보낸 것과 비슷해 보인다. 무릉도원과 밀러 행성의 100년과 23년간의 차이는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무릉도원이 밀러보다 중력이 커서 시간이 그만큼 느리게 흘렀기 때문이다. 시간은 흐르지 않고 인간만 그렇게 느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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