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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해석

사천 덕곡리 고인돌마을

모든 사람의 죽음이 해석이 될까. 그렇지는 않다. 죽음이 해석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거나 특별한 의미를 담을 때나 가능하다. 최근에 가야의 고분이 새롭게 발굴되었는데 그곳에서 가야문화를 재해석할 수 있는 부장품들이 나왔다고 한다. 자신의 죽음이 해석되고 기억될 수 있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담게 된다. 사후세계가 어떠한지 가보지는 않아서 모르겠지만 죽음의 해석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적지 않게 아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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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선사시대나 청동기시대까지 올라가서 무덤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흔적을 연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끊어진 역사가 아니라 이어진 흐름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곳에 자리한 사천 덕곡리 지석묘군(泗川 德谷里 支石墓群)은 경상남도 사천시 용현면 덕곡리에 있는 고인돌 군이다. 1979년 12월 31일 경상남도의 기념물 제49호 덕곡리 지석묘군으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12월 20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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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덕곡리 마을이라고 생각하면 되지만 마을의 분위기는 어딘가 모르게 남다르다. 사천에서 지석묘군이 자리한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사천시 덕곡리의 마을 안과 주변 논밭에 모두 15기의 고인돌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고인돌 마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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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이 모일만한 보호수 아래에는 데크가 잘 만들어져 있다. 죽음을 해석하는 것은 결국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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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인돌 무리는 인근에 있는 신벽동 고인돌과 함께 사천 지방에 청동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음을 증명해 주는 중요한 자료로 형태상 모두 바둑판식으로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2.2m, 너비 1.4m이며, 받침돌의 크기는 너비 40㎝, 높이 20㎝이다. 땅 속에 마련된 하부구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상자 모양의 석관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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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전국에 자리한 고인돌군은 역사유적지로 사람들이 사는 곳과는 조금 떨어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사천 용현면 덕곡리의 고인돌군은 마을 사람들과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함께 공존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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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찾아가 보는 용현면은 계속 바뀌어가고 있었다. 지난 10월 공사에 착수해 2021년 6월 청사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는 용현면 행정복지센터 부지 내 국도비를 포함, 총 사업비 46억 원이 투입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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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곡리를 관할하는 용현면의 청사는 최종 설계안을 바탕으로 지상 3층, 연면적 1621.26㎡규모로 복합청사(행정복지센터, 용현면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 중 오동지교류센터)를 건립되게 된다. 그러고 보니 벌써 21년을 이야기하기 시작하고 있다. 덕곡리를 비롯하여 사천의 여러 곳에 있었던 집단은 청동기 시대에서 초기 철기 시대까지 세력을 이어갔을 것이다. 사천에 적지 않은 유적이 발굴된 늑도가 국제무역항으로 위세를 떨친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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