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시간을 걷다.

나는 지금 부여에 있었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사람은 질서 있는 형태의 에너지인 음식을 소비하고 그것을 무질서한 에너지 형태인 열로 전환시킨다. 무질서가 증가시키는 팽창 국면에서 인류의 역사는 존재할 수가 있는 것이다. 만약 우주가 수축한다면 우리는 생존할 수가 없다. 역사 또한 그렇게 질서가 있는 형태에서 무질서로 나아가다가 그 생명을 다하면 다른 에너지가 채워지면서 새로운 국가가 세워진다. 이것이 국가의 흥망성쇠로 말할 수 있다.

MG0A5379_resize.JPG

오래간만에 부여의 백마강이 흐르는 곳으로 왔더니 강변에는 부여의 백제를 상상할 수 있는 조형물들이 만들어져 있었다. 백제의 시간을 걸으며 부여 있던 것을 기억하는 시간이다.

MG0A5380_resize.JPG

부여를 상징하는 것은 정림사지 5층 석탑이기도 하다. 목조탑에서 석조로 넘어오면서 목조탑에서 표현했던 것을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쉽지 않았으며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그나마 목조탑의 형태가 잘 남아 있는 것이 정림사지 5층 석탑이다. 그 후로 통일신라,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석조 탑은 그 형태가 단순해진다.

MG0A5381_resize.JPG

지금을 백제의 도성이 대부분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어느 정도의 기술력을 가지고 만들었는지는 추정해볼 뿐이다. 11월의 소설은 작은 겨울이기는 하지만 작은 봄이라고 불리는 절기다. 그때까지는 야외를 돌아다니기에는 괜찮은 것도 사실이다.

MG0A5383_resize.JPG

충청남도의 부여라는 지역명은 한 국가의 이름이기도 했다. 지금은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부여인은 농업과 목축을 겸했으므로 농경민이면서 기마에도 능했으며 수도에서는 왕을 중심으로 부여의 모든 대소 족장이 모여 하늘에 제사 지내고 국가의 주요 문제를 토의하고 처리했다고 한다.

MG0A5386_resize.JPG

질서 있는 것들은 언젠가는 무질서한 상태로 변하게 된다. 의미 있는 것들을 소비해서 의미 없는 것들로 만들면서 사람들은 생존할 수 있다. 백제의 시간을 생각하면서 걸을 수는 있지만 시간의 화상을 과거로 돌릴 수는 없다. 백제가 부여에 있었기에 어떤 이들은 지금도 대한민국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MG0A5387_resize.JPG

백마강이 이렇게 길었던가. 천천히 저 끝까지 걸어갔다가 오면 한 시간은 족히 걸리는 구간이다. 부여 쌍북리 유적 발굴 조사 현장에서는 백제가 천도한 직후 만들어진 왕궁 관련 건물지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백제 권역에서 가야 유물이 발견된 것은 서울 풍납토성 한성백제 유적지와 변산반도 죽막동 유적지에 이어 이번이 3번째이다. 가야의 문화도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모든 연결점을 주의 깊게 바라보게 된다.

MG0A5390_resize.JPG
MG0A5394_resize.JPG

백마강변의 함께 가는 길은 이렇게 달팽이처럼 늦게 가지만 행복이라는 감정은 커지게 된다. 행복이란 인간에게 과연 무엇이고 어떻게 정의되어 왔을까.

MG0A5397_resize.JPG
MG0A5402_resize.JPG

백제의 시간은 의자왕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다. 백마강변에는 부소산이 있고 부소산에는 그 유명한 낙화암이 있다. 부소산의 산 이름은 『세종실록 지리지』의 기록에 처음 선보이며, ‘부소(扶蘇)’의 뜻은 백제시대 언어로 ‘소나무(松)’의 뜻이 있다고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가을 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