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옥포항에 자리한 옥포마을
건강하고 행복하면서 오래 살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들이 필요하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일상적인 업이 필요하고 살아갈 수 있는 집과 적당한 시간적인 여유와 삶을 풍요롭게 해 줄 수 있는 취미와 규칙적인 운동에 열정이라는 조미료가 더해지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평범한 것이지만 평범한 삶은 평범한 노력으로만으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시간을 낚는다는 말은 시간은 보내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듯이 노력을 해야 충만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곳 옥포항이 있던 곳은 임진왜란으로 국토가 유린되었을 초반에 이순신이 대승을 올린 곳이기도 하다. 작년에 옥포항에서는 제4회 옥포항 국제문화제가 열리기도 했었는데 올해는 열리지 못했다. 가을! 옥포 愛’라는 주제로 개최된 이번 행사는 오전 9시 풍물 길놀이를 시작으로‘충무공 이순신 만나러 가는 길 시민 걷기 대회'등을 내년에 만나볼 수 있을까.
이른 아침 옥포항으로 와보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곳에 나와 낚시나 생업에 종사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앞바다는 원균의 전선 4척, 협선 2척과 합세해 송미포(松未浦: 거제시 동부면)에서 작전을 짠 후 전 함대가 동시에 출항해 옥포 근해에 이르자 척후장(斥候將)인 사도첨사(蛇渡僉使) 김완(金浣)이 적을 발견한 곳이 기도 합니다.
옥포항의 중심으로 나오면 옥포대첩에 대한 이야기를 시로 써놓은 비를 만날 수 있다. 지금 옥포항 부근은 도시화되어 있어서 당시의 모습을 쉽게 상상하기는 힘들지만 수많은 수군이 이곳에 집결했을 때의 모습도 궁금할 때가 있다.
지금은 모두 거제시로 불리고 있지만 옥포항이 있는 곳은 장승포시라고 불렸던 때가 있다. 옥포지역은 신라 문무왕 17년(677) 상군에 속하는 거제현이었던 곳이다. 1995년 1월 1일 장승포시와 거제군이 통합하여 거제시에 소속되게 되었다.
옥포대첩 - 이은산
한 바다 외로운 섬 옥포야 작은 마슬
고난의 역사 위로 네 이름 빛나도다
우리 님 첫 번 승첩이 바로 여기더니라.
창파 구비 구비 나르는 저 갈매기
승전고 북소리에 상기도 춤을 추니
우리도 자손만대에 님을 기리오리다.
이은상 선생이 1971년에 발표한 옥포대첩 시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과 휘하 장병 함께 마을 주민들이 힘을 합쳐 왜군을 무찌른 첫 승첩을 후손들이 두고두고 기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 거제라는 지명의 한자는 크게 구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옥포대첩으로 인해 전쟁 초반 일본군은 통신과 보급로를 차단당해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거제에는 조선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많은 직장인들이 조선소에 속해 있다. 코로나 19에도 거제도 조선소는 방역 속에 잘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적게는 수 명, 많게는 수십 명이 모여 일하는 조선업 특성상 조업 중 접촉이 불가피한 데다, 통근버스나 식당 내 밀집도도 높아 단 1명의 감염자로 인해 수만 명이 일손을 놓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낚시를 하시는 분들은 어떤 느낌일까. 이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은 낚시를 하며 시간을 낚는 것이 아닐까.
낚시를 하는 사람들의 뒤의 광장에는 임진왜란 해전 승전지를 알리는 비도 세워져 있다. 어떤 여행지에 가보면 광장이 어떻게 조성되어 있는지 살펴본다.
이맘때가 되면 먹고 싶은 것도 많아진다. 거제에도 9가지 맛이 있는데 낚시를 해서 먹어볼 수도 있지만 음식점에서 그 맛을 볼 수도 있다. 전국 대구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구로 끓인 대구탕이나 이맘때가 되면 더 맛이 좋아지는 하얀 속살이 있는 굴구이, 거제 앞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거제 생선회, 고단백 저칼로리인 볼락은 쫄깃하고 짭짤한 껍질, 부드러우면서 고소한 하얀 속살의 볼락구이 등등 시간과 함께 맛볼 것이 너무 많다.
이른 아침이 햇살에 몸을 녹이면서 잠시 벤치에 앉아본다. 선형으로 된 동선을 따라 걸으면 그 안에서 건축물과 자연의 관계가 계속해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거제 옥포항은 열린 광장과 시간, 역사, 낚시 등이 묘하게 어우러진 독특한 바다의 풍광을 만들어내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