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역사학

백제의 계획도시, 세종 나성동

백제의 역사에 포함되는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백제의 도읍들과 연관된 백제 후기(475~660)의 유적으로, 충청남도 공주시와 부여군, 전라북도 익산시에 분포하는 8곳의 유적을 포함한다. 수도였던 한성은 서울의 개발로 인해 대부분의 흔적이 땅속에 묻혔거나 사라졌지만 웅진과 부여 등에는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역사의 쓸모는 살펴보고 나누어보는 것에 있다. 백제문화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등장하는 ‘검이불누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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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주박물관에서 진행되었던 기획전시전은 지난 8월의 코로나 19 확산으로 인해 중단되었다가 다시 시작되었는데 그 첫 번째는 백제의 계획도시, 세종 나성동으로 지난 9월 22일부터 2021년 3월 1일 국립공주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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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계획도시였던 곳이 세종지역이었으며 행정중심 복합도시로서 다시 계획도시로 부상했으니 위치가 요충지였음을 알 수가 있다. 개인정보를 입력하고 체온을 재고 들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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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전시실로 들어오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바로 불비상이다. 돌에 염원을 담아 새긴 불비상은 비석처럼 다듬어 앞면이나 네 면에 부처를 조각한 불상으로, 만든 사람의 염원이 담긴 발원문을 새겨 넣기도 한다. 세종 나성동에서 발견된 불비상으로 인해 이 지역이 백제의 중요한 활동무대였음을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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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세종시 나성동 일대를 삼기라 하였는데 충청, 전라, 경상도의 강물이 그곳에서 합류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금강을 이용하여 물자를 이동하기에 편리하였기에 백제의 도시가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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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왕에 의해 백제가 남하하기 전까지 세종지역은 지방 거점도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쇠로 만든 농기구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토기 등으로 살펴보면 사회계층화와 함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으며 금강 유역에 대한 백제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기 위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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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소국들 중에서 백제가 고대국가를 세우는 데 성공하였다. 나성동 일대는 마한의 영역이었는데 기록에 의하면 세종 지역에는 공주와 함께 막로국, 불운국, 감해비리국 등의 소국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무렵 본격적으로 철기를 제작하였고 남부 지역의 변한, 진한 세력들과 교류하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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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벽화에서 확인되는 삼국시대 장고뿐만이 아니라 시루, 계란 모양 항아리, 동이, 귀때토기, 손잡이 달린 항아리, 깊은 바리, 새모양 토기, 둥근바닥 항아리, 토제받침, 받침모루, 두 귀 달린 단지등 수많은 유물들을 볼 수 있는 전시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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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속에서도 후대에 그 흔적을 알리기 위해 남겨 있기에 역사의 쓸모를 살펴볼 수 있다. 대부분의 움무덤 내부에는 껴묻거리를 놓기 위한 공간을 따로 마련하지 않았지만 송원리유적 움무덤에서는 토기, 철기, 장신구 등이 껴묻거리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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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라는 지역의 지리적인 특징은 북쪽으로 천안, 동쪽으로는 보은과 청주지역으로 나아갈 수 있는 군사와 교통상의 전략적 거점이었다. 나성동을 중심으로 대평리 유적 등이 남아 있다. 세종은 백제가 웅진으로 도읍을 옮기기 전부터 백제 중앙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리고 1,600여 년이 지난 지금 44개의 중앙행정기관과 15개의 국책연구기관 등이 자리한 중부권 중심도시로 성장하였다. 세종은 백제와 대한민국의 행정이 공존하는 역사의 공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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