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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이 만든 한산(閑山)

달 밝은 밤 아니해 밝은 낮의 한산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한 말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라는 '생즉필사 필사즉생'이다. 그 말을 곰곰이 되씹어보면 비우고 싸운다는 의미가 들어가 있다. 불이 꺼진 상태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인 '니르바나(nirvana)'를 한자로 표기하면 열반이다. 해탈은 벗어났다는 뜻의 산스크리트어인 '비목사(Vimoksa)'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이순신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했던 관점에서 보았고 승리를 이끌었던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그 속에 비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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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밝은 밤에는 한산도를 들어갈 수가 없으니 낮 밝은 낮에 한산도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풍경이 만든 한산은 이순신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가볼만한 풍경이 자리한 곳이다. 배를 타고 잠시 몸을 맡기면 한산도까지 금방 도착할 수 있다. 차를 배에 싣고 가는 것이 이동하기에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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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어디를 가더라도 마스크를 끼고 다니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개인적인 공간에 있지 않는 이상 마스크는 필수이니 배를 타고 들어갈 때에도 여유분의 마스크를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 사람들의 코로나 19 방역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성공한 것은 이미 일상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외국인들의 경우 입은 자신의 표현 수단이기에 예전부터 가리는 것은 꺼려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바뀌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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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바다를 가다 보면 작은 섬들이 간혹 보이는데 저 섬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할 때가 있다. 동양에서 공간이라는 단어는 비움과 관계의 합성어로 만들어진 것이다. 비움 속에 관계가 있으니 이날도 섬과 섬이 연결되어 썸&썸이 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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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 말하면 한산도는 전형적인 군사도시라고 볼 수 있다. 모든 시스템이 전쟁에 최적화된 형태로 구성이 되어 있으며 평소보다 빠르게 생산할 수 있는 생산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기에 한산도의 각 지명은 그것과 연관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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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승당으로 걸어가는 길에서 이순신의 숫자 '0'을 생각해본다. 그가 왜군과 전투에서 패한 숫자는 0이다. 0은 비움 즉 아무것도 없음을 뜻하는데 서양에서는 신에 의해서 창조된 세상에 비움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0'이라는 개념은 무신론으로 여겼고 이는 신성 모독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순신이 살았던 시대에 서양인들은 한 번도 패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0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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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섬이 좋은 이유는 떠나야 하는 아쉬움에 있다. 잠시 머무를 뿐 오래도록 있을 수 없기에 무언가 아쉬운 느낌이 들지만 내년에 다시 오면 그만이니 그것만으로 만족해본다. 제승당에서 동양의 건축물의 특징을 볼 수 있다. 서양의 건축물은 벌과 같은 곤충이 머무는 곳이고 동양의 건축물은 개미 같은 곤충이 머무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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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가 없는 개미는 땅과 연결되어 건물을 짓는 반면 하늘을 날 수 있는 벌은 아무것도 없는 공중에 집을 짓는다. 기둥 구조를 사용하여 기둥과 기둥 사이로 주변 환경이 잘 보이는 동양의 건축은 땅과 연결되어서 집을 짓는 개미처럼 주변 환경과의 관계성이 중요시되는 건물의 형태로 지어진다. 반면 서양의 건축물을 수학적 논리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며 기하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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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전투의상황을 묘사한 그림과 함께 군영의 깃발들이 제승당 안에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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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축의 단청이 아름답게 보인다. 선조들은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처마를 예쁘게 색칠하여 단청을 만들어두었다. 단청의 녹색은 나뭇잎으로 보여서 주변 풍경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한다. 건물의 단청 색깔처럼 채도가 높고 밝고 선명한 톤으로 칠하면 밝은 바깥 경치와 연결되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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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배를 기다리며 주변의 산책로를 돌아본다. 비었다는 의미를 알았을 이순신의 전략은 결국 전투에서의 패전의 숫자를 '0'으로 만들었고 자연과 어울리게 만든 건물을 돌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자연 속으로 들어와서 걸으면 풍경이 만든 한산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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