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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Nov 26. 2020

석탑과 마을

소이면의 후미리, 갑산리

노자는 "가장 위대한 직선은 곡선처럼 보일 것이며, 가장 위대한 사각형은 모서리가 없다. 가장 위대한 이미지는 형태가 없다."라고 말했다. 동양 철학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는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자연 속에서 자리한 것들을 보면 그 가치를 알 수 있다. 음성의 소이면은 대장리·후미리·중동리·문등리·갑산리·봉전리·금고리·충도리·비산리 등 9개의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는 곳이다. 이 지역의 후미리에는 석탑이 남아 있으며 갑산리에는 여러 그루의 고목들이 남아 있다.

면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음성천 유역에는 비교적 넓은 평야가 발달해 있기에 쌀이 많이 소이면에서 생산이 된다. 원래 석탑은 석조 탑파(石造塔婆)의 줄임말이며 후미리에 있기에 후미리 석탑이라고 불리고 있는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소이면에는 후미리의 석탑과 문화재로는 비산리에 미타사 마애여래입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30호)이 남아 있다.

충주군 소이면과 군내면(현 음성읍) 석인리 일부와 불정면 문등면 일부를 병합, 소파면의 소자와 사이포면의 이자를 따서 음성군 소이면으로 편입되었는데 그중 문등리는 음성군의 가장 동쪽인 마을이다.

갑산리의 정자 안에서는 금봉산에 산신제를 올렸는데, 1979년 산제당을 철거한 뒤 제를 지내지 않았으나 마을에 변고가 자주 생겨 지금은 산제당 터에서 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음성의 갑산마을에는 500년이 넘는 수령의 탑골 느티나무와 1,000년이 넘는 수령의 금봉산 향나무, 은행나무, 정자 안 느티나무, 평지 말 느티나무 등이 아직도 남아 있으며 권길충신각도 있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응선(應善). 문충공(文忠公) 권근(權近)의 6세손이다. 아버지는 사직 권익(權翊)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에 살았던 권길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에 상주에서 호장(戶長) 박걸(朴傑)을 비롯한 많은 군사와 백성들과 함께 싸웠으나 무기와 군병의 열세로 패하여 4월 25일 전사하였다.

수확을 끝내고 볏짚들이 쌓여 있는 곳 뒤로 옛날의 농사 모습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갑산마을의 권길 충신각은 2002년 5월 18일 음성군 향토문화유적 제13호로 지정되었다.

문명 발생의 첫 시작은 지리와 기후적 제약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기후가 건조해져서 물이 부족해진 인류는 자연스럽게 강가에 살게 되었고 농업으로 식량 부족의 위기를 극복하였다. 농업은 인간이 컨트롤하는 생태계다. 지금까지 역사적인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은 농업과 그 문화가 발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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