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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Dec 06. 2020

고결함

시인이자 문장가였던 권섭의 옥소 영각

시험을 보기 위해 문학을 접하는 것은 그렇게 재미나 감성을 느끼기가 쉽지가 않다. 외우는 것과 감상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수능을 위해 고전시가를 공부하다 보면 등장하는 시중에 권섭의 시도 있다. 권섭은 조선 후기의 문인으로 적지 않은 시를 남겼다. 그의 시중에 매화가 있는데 조선의 선비들이 매화를 사랑했던 것은 다른 나무보다도 뛰어난 여러 모습으로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고려말의 이색을 비롯하여 성삼문, 김시습, 김종직, 이행, 정도전 등 수많은 유학자들이 매화를 주제로 시를 썼다. 

권섭을 모시는 영장이 문경의 한적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데 옥소 영각이라고 부르고 있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 때는 19세로 소두(疏頭 : 연명(連名)하여 올린 상소문에서 맨 먼저 이름을 적은 사람)가 되기도 했지만  송시열(宋時烈)을 위시한 주변 인물들의 사사(賜死) 또는 유배의 참극을 본 후 관료가 아닌 문학인의 삶을 살게 된다.  일생을 전국 방방곡곡 명승지를 찾아 탐승(探勝) 여행을 하며 보고 겪은 바를 문학 작품을 남겼다. 

권섭이 지은 시로 매화는 총 4수의 연시조로 평소 고결한 속성을 지녔다고 생각한 매화를 소재로 삼아 매화의 지조를 예찬하고 매화를 완상 하는 흥취를 드러낸 작품인데 비슷하게 지문으로 수능에 나오기도 한다. 그의 시중에 영삼 별곡도 수능의 단골 문제로 출제가 된다. 영삼 별곡은 권섭이 영월을 출발하여 삼척에 이르는 동안 보고 겪은 내용을 엮어서 썼는데 개인의 여행 체험이 담겨 있다. 

크지는 않지만 이곳 옥소 영각은 1895년에 지어진 건물로 그의 영정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49호 지정되어 문경새재로 들어가는 길목의 옛길 박물관에 전시가 되어 있다. 이 추모각은 앞면 3칸 옆면 1칸 반 규모의 맞배기와집으로 주위에는 토석 담당을 둘러두었다. 담장 사이에는 사주문을 세워두었는데 문경 유림에서는 매년 음력 10월 말정에 옥소 권섭을 기리기 위한 제향을 올리고 있다. 

그의 시는 주제·소재·시어·기법 면에서 모두 파격적 참신함을 보여주었으며 전통의 터전 위에서 새롭게 열리는 근대기를 내다보면서 새로운 시 세계를 창조했다고 보고 있다. 그의 필사본으로 옥소고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코로나 19가 세상에 보기 쉬운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구석구석에 다양한 이야기를 접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주고 있다. 권섭이 했던 형승이나 탐승이라는 말에는 조선시대 유가(儒家)에서 인격을 수양하거나 도야하기 위한 선비의 이념이 들어있다. 옛날 경치가 뛰어나고 아름다운 곳을 형승(形勝)이라 불렀고, 그 멋진 곳을 찾아 거기 풍경을 즐기는 것을 탐승(探勝)이라고 표현했다.1686년(숙종 12) 16세의 나이로 경주 이 씨(慶州李氏) 이조참판 이세필(李世弼)의 딸과 혼인한 권섭의 본관은 안동으로 아버지는 증 이조참판권 상명(權尙明), 어머니는 용인 이 씨(龍仁李氏)로 좌의정 이세백(李世白)의 딸이다. 큰아버지는 학자 권상하(權尙夏), 작은아버지는 이조판서 권상유(權尙遊)로 학맥이 상당한 집안이었지만 여행을 무척 좋아했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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