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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Dec 13. 2020

만경 (萬頃)

김제의 옛 이름이 있던 곳

김제와 군산은 인접한 지역이기에 역사적으로 많은 교차점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군산지역으로 속해 있는 임피현(臨陂縣)의 속현으로 만경이 존재한 적이 있었으며 만경현으로 승격이 되기도 했었다. 만경은 만경강과 동진강 사이의 비옥한 퇴적 평야는 예로부터 능제호(陵堤湖)에 의한 관개농업이 발달하였던 곳이었지만 흉년으로 김제군에 속하기도 한다. 지금은 여행지로 알려진 고군산군도의 군산도(群山島)는 고려 때부터 조선(漕船)과 중국 무역선의 기항지로 번영하였던 곳이다. 역사 속에서 행정 지역상 김제와 군산은 서로 연결고리가 많다. 

만경 향교가 있으며 능제저수지가 자리한 만경읍의 만경으로 처음 불려진 것은  757년(경덕왕 16) 만경으로 이름을 바꾸어 전주 도독부 관내 김제군의 영현이 되었고, 한때 후백제에 속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만경읍에서 안쪽으로 들어오면 만경지역의 교육을 책임졌던 만경 향교가 나온다. 지금은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 있지만 과거에는 잘 보이는 곳에 자리했을 것이다.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게 된다. 해가 서편에 드리우면 햇살이 나무 끝에 걸린다. 이를 일러 상유(桑楡)라 한다. 상유와 만경을 합치게 되면 만년(晩年)을 의미한다. 

만경 향교 같은 곳에서 즐겨 배웠던 경전인 중용의 개념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다. 참 쉽지 않은 일이다. 하고 싶은 것, 재미있는 것, 자극적인 것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평야가 있는 곳은 벼농사가 일반적으로 이루어지는데 벼농사 사회의 공동체 내에서 튀지 않게 행동하라는 것은 중용과 맥락이 맞는다. 

지금이야 서양의 종교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만 동양은 사후 세계에 큰 관심이 없었다. 공자에게 제자 계로가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을 하자 공자는 "사는 것도 모르는데 죽은 뒤를 어떻게 알겠는가?"라는 답했다고 한다. 읽고 보니 맞는 말이다. 살면서 단 하루 이후의 일도 알지 못하는데 멀기만 한 죽음의 이후의 일을 알리가 만무하다. 

향교와 같은 동양의 건축물들은 낮은 담장이나 마당, 처마 및 공간들은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유럽이나 그리스 등의 건축물은 첫인상에서부터 웅장하고 압도되게 만들어 경외심을 들게 만들지만 동양의 건축물은 친숙함이 특징이다. 전국에 있는 수많은 향교를 돌아보면 시대와 상관없이 건축 양식의 진화라고 볼만한 것이 거의 없다. 고려시대에 지어진 것이나 조선시대, 조선시대 말기에 지어진 건물의 양식은 변화가 없다. 

전북 김제시의 만경읍은 무언가 무르익은 느낌이 드는 지역이다. 오랜 역사 속에서 군산지역에 속했다가 김제에도 속하기도 했던 만경의 한자를 보면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인생 만년에 곤궁하거나 기댈 곳이 없고 마음 편한 시간을 보낼 수 없다면 어찌 마음이 빈곤하지 않겠는가. 겨울에도 푸르름을 가지고 있는 만경 향교의 소나무 옆에서 멀리 만경평야를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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