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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an 12. 2021

일가 (一家)

눈 내린 연산 영사재에서..

이제 종가라는 개념은 과거의 이야기로 사라졌을 만큼 희미해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일가를 이루는 것은 성인이 되어 독립적으로 살 수 있음의 지표이기도 하다. 1인 가구가 900만 가구에 이르며 비율로는 40%에 달하지만 삶의 수준은 예전 같지는 않다. 주변에서 보면 성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일가를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필자가 언급하는 일가는 자신이 거주할 안정적인 주택이 있고 현재 경제적으로 그렇게 팍팍하지 않은 가운데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일가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은 혼자만의 삶을 책임지기에도 빠듯하다는 의미다. 

1인 가구가 빠른 속도로 느는 이유를 두고 많은 사람이 결혼 안 하고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서 이기도 하지만 전 연령대에 걸쳐 급증하고 있는 것의 기반에는 경제적인 것도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전국에 자리한 종갓집들은 가족공동체의 삶이 견고했을 때의 흔적들이다. 종갓집의 명맥이 유지되고 있는 곳에는 제향 하는 공간인 재실도 만들어져 있다. 

문화재자료 제378호로 지정된 논산 연산면의 영사재는 광산 김 씨인 김극뉴의 처 의령 남 씨를 제향 하는 곳으로 200여 년 전에 세워진 곳이다. 처의 재실을 만들어 두었을 정도로 사계 김장생의 광산 김 씨 비중을 볼 수 있다. 김극뉴는 불천위 사당에 모셔진 김국광의 아들로 그의 묘는 8대 명당이라는 순창군 마흘리라는 곳에 터 잡고 있다. 수많은 김계휘, 사계 김장생과 김집 등, 명신현관을 배출한 데에는 그의 묘의 터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재실로 지어진 곳이지만 살림집과 다를 바가 없는 연산 영사 재다. 재실은 앞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로 팔작지붕이다. 연산 영사재내의 동재와 서재는 최근에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김극뉴의 묘는 순창에 있지만 그의 처 의령 남씨의 묘는 연산 영사재의 뒤편 구릉의 동향 사면에 자리하고 있다. 그녀의 묘에는 묘비, 문인석, 석등, 상석 등이 배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거주하고 계신 분의 겨울 식량인 모양이다. 말려지고 있는 생선이 겨울바람에 꼬들꼬들하게 보인다. 논산에는 같은 영사재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재실이 있는데 그곳은 반남 박씨의 재실이며 이곳과 다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가문을 위해 희생했던 김장생의 7대 할머니 양천 허 씨를 위한 재실인 논산 영모재와 의령 남 씨의 연산 영사재는 광산김씨 가문을 지탱했던 힘을 보여주는 듯하다. 

작은 문을 통해 뒤로 나오니 '유명조선 정부인 의령 남씨지묘'의 무덤이 보인다. 호패형의 묘비는 1689년(숙종15)에 세워졌다고 한다. 

이런 한적한 곳에 공중화장실이 있나 해서 유심히 보니 이곳은 종중 행사 시에만 사용하는 화장실로 광산 김 씨의 종중에서 만들어놓은 것이라고 한다. 예전보다 더 일가를 이루는 것이 더 어려워진 듯하다. 물론 과거에도 불평등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제 노후 같은 먼 이야기를 할 것도 없이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고 싶을 때 의지할 수 있는 건 경제적인 것이 1순위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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