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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an 19. 2021

忠淸의 길

음성 비채길과 충효정 

임금을 섬긴다는 의미의 충을 사용한 도시 충주, 맑은 분위기의 고장이라는 청을 사용한 도시 청주는 충청도라는 이름에 남겨져 있다. 1895년의 지방제도 개정으로 충청도가 폐지되어 사라졌다가 1896년의 13 도제 실시로 충청북도와 충청남도로 나누어지게 된다. 음성군을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는 길은 빛의 길로 그냥 발음대로 읽으면 비채길이 된다. 

처음 음성군의 비채길을 가면 보통은 반기문 생가와 반기문 평화랜드 등을 이어가는 비채길을 걷게 된다. 보덕산에 얽힌 전설을 스토리텔링 해서 하늘길, 빛의 길, 그리고 땅길 등 3개의 테마코스를 개발해두었는데 보통 빛의 길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음성의 주요 국도변은 모두 눈이 치워져 있었지만 안쪽으로 들어오면 아직도 눈이 많이 쌓인 곳이 있다. 눈이 쌓여 있는 이 길을 걷다 보면 오래된 비석도 보고 마을분들이 세워놓은 흔적들을 읽어볼 수 있다. 물론 한자로 쓰여 있어서 조금은 신경을 써서 살펴봐야 한다. 

비채길에는 행치마을이라고 부르는 곳도 있는데 삼신(天, 地, 明)이 큰 산(보덕산)에 놀러 왔다가 만발한 살구꽃에 반해 머물러 살게 됐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마을에 큰 인물이 나올 것이라고 하는데 큰 부자, 큰 장수와 크게 이름을 알릴 사람이라고 하는데 아직 큰 부자가 나오지 않았다면 이곳에 터전을 잡아볼까 심각하게 고민해본다. 

황금색으로 가득 채우던 때가 불과 4개월 전이었는데 지금은 눈이 내려 논이 하얀색으로 가득 차 있다. 옛날에는 논에다가 물을 담아서 마을에서 스케이트나 썰매를 탔던 기억도 있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다. 

비채길의 안쪽으로 들어오니 멋들어진 보호수와 함께 충효정이라는 정자가 보인다. 충효정은 충청도 길에 어울리는 정자다. 아쉽게도 트래킹을 한 후 출출한 허기를 채워줄 만한 식당이 없다는 점이다. 

이 길은 확실하게 비우는 길의 느낌이지만 채움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어떤 것을 채울지에 대해서는 각자의 몫이다. 정겨운 마을 풍경과 흰색의 설경을 가진 길들은 조용하게 손짓하고 있다. 

때론 마을의 따뜻한 인심을 만날 때도 있었지만 코로나 19에 그것도 여의치가 않다. 마을에서 어쩌다가 마주쳐도 그냥 멀리서 보고 스쳐 지나간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어 파란색 그 자체였고, 땀을 식혀줄 시원한 바람도 필요 없을 정도로 충분히 춥다.

아무도 발을 디디지 않는 눈길에 호기롭게 발을 내디뎌본다. 역시 눈이 신발 속으로 들어갔다. 호기로움은 한순간이고 차가움은 오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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