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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an 19. 2021

설경 속의 정자

시간과 자연 속의 독락정

눈이 내리는 날 안남면에 자리한 독락정이라는 정자를 다시 찾았다. 작년에는 눈을 보기가 어려웠는데 올해 들어서는 눈이 자주 내린다. 눈이 내리면 자연스럽게 설경이 만들어진다. 호모 사피엔스의 시작으로 가보면 숲 속에서 사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숲에서 살았다. 수렵과 채집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면서 낮은 구릉지 그리고 경사가 더 완만하고 물이 풍부한 이 같은 공간에 마을을 만들고 거주하게 되었다. 

독락정 상량제문에 나온 것처럼 깎아 세운듯한 언덕이 천 길의 푸른 절벽 가에 삐죽삐죽 솟아 있고 맑게 흐르는 강물은 십 리 길의 깨끗한 모래 위에 거울처럼 열려 있는 때다. 마을의 유래비도 눈에 뜨여 읽어본다. '化仁江'(화인강)은 화인진 앞으로 흐르던 강으로 지금의 안내~안남면 수계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나오는 기록이나 역사의 흔적들은 대부분 이렇게 강가나 천변에 남아 있다. 유명한 정자 치고 물이 없는 곳에 세워진 것이 많지가 않다. 1년이 시작되었으니 계획을 깨알같이 짜서 하루의 일과로 삼는다.  화인강 수계의 안남면 연주리에 자리한 독락정은 옛날 대천(大川)이 화인진(化仁津) 하류(下流)가 남쪽 지경으로 들어와서 주안현(周岸縣)으로 흘러가던 곳이었지만 대청호로 사라져버렸다. 

독락정은 고당산이 높이 오뚝이 솟아 있는 데에 자리하고 있으며 동이 바위 하래로 시냇물이 쉬어서 흘러갈 수 있도록 한반도 지형이 만들어져 있다. 독락정은 조선 선조 40년(1607) 절충 장군 중추부사의 벼슬을 지낸 주몽득이라는 인물이 세운 정자로 알려져 있다.

독락정이라는 서당을 짓는 데 있어서 봄에는 거문고를 타고 가을에는 시를 읊는 곳이 되고 중심에 온돌방을 갖추니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함을 느끼게 하려고 했다고 한다. 지금 불을 지펴볼 수 없으니 얼마나 따뜻한지는 모르겠지만 방이 크지 않아서 덥히는데 그리 시간을 걸리지 않을 듯하다. 

안읍은 수읍(首邑), 즉 고대부족국가의 통치자가 있었던 고을이라는 왕읍(王邑)의 뜻을 가지니 수렵과 채집에서 벗어나 농업이 근간을 이루던 때라고 보인다. 산림과 비교하면 초원처럼 개방된 장소는 먹을 것이 적고 포식자가 많아서 위험했었다. 

지리산이나 덕유산 등에서 볼 수 있는 상고대나 눈꽃은 없지만 해가 저물어가는 안남의 풍광은 충분히 만족스러워 보였다. 안개와 수증기가 나뭇가지에 달라붙어 얼어버린 '상고대'는 나무에 핀 눈꽃과 어우러져 화려한 자태를 보여주지만 접근성이 좋은 이곳도 괜찮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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