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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03. 2016

어떤 살인

세상을 향한 슬픈 복수극

최근 지인과 만난 술자리에서 그런 이야기가 오고 간 적이 있다. 학창 시절 껌 좀 씹었다는 불량(?) 학생들 중 일부는 정상적인 생활로 못 돌아온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을 재미로 살았던 사람들은 그 본성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것 자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당한 살인이라는 것이 성립될 수 있을까. 정당방위라는 말은 있어도 정당한 살인 이라는 말은 없다. 정당한 살인만큼 위험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피해를 입어야 살인을 저질러도 용납을 받을 수 있을까. 사격으로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꿈을 꾸고 있던 지은은 못된 친구들의 일탈로 인해 한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교통장애를 겪게 된다. 이후 디자이너로서의 꿈을 꾸면서 살아가지만 세상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 절친이라고 생각한 친구가 옆집에 살고 있지만 그 친구는 전형적인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다. 오히려 남자친구를  두둔하기까지 한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오던 중 세 명의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그녀는 경찰서를 찾지만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한다. 그녀를 신경 써주는 것은 여동생이 성폭행을 당한 뒤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가는 것을 본 자겸이라는 형사다. 성폭행한 남자 중 한 명이 다시 찾아와 그녀를 성폭행하려고 하자 우발적으로 살인을 하게 된다. 그때 그녀는 건너오지 못할 강을 건너버렸다. 누군가 말려주지 않는다면 그녀의 마지막은 너무나도 뻔한 결말이다.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약자들이 느끼는 두려움의 냄새를 잘 맡는다. 그리고 그 약점을 후벼 판다. 양아치나 조폭, 룸살롱 사장, 고리대금 업자들이 그런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빨아먹을 때까지 빨아먹고 더 이상 짤 것이 없어도 짤 수 있는 인간들이다. 

지은은 비리 형사가 자신의 뒤를 캐자 어쩔 수 없이 그까지 살해하고 총을 탈취한다. 어릴 때 연습했던 사격실력 덕분인지 쏘기만 하면 백발백중이다. 자신에게 피해를 입힌 가해자들을 찾아다니며 한 명씩 처리해나간다. 여기에 보너스로 자신의 친구에게 데이트 폭력을 일삼는 남자와 정규직을 빌미로 성관계와 성추행을 한 직장상사까지 한큐에 해결하고 자살을 시도한다. 


영화는 정의를 이야기하지도 않고 막다른 길에 선 어떤 약자의 몸부림을 덤덤하게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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