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부동산과 기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능력은 무의미

현재 서울시장에 나서는 후보들은 모두 부동산에 올인하고 있다. 부동산은 한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모두 지위 상승에 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지금이야 상당수의 사람들이 아파트 같은 형태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못했다. 유럽 같은 경우는 노블레스 즉 귀족이란 영지를 가진 존재였으며 한국에서도 양반이란 자신의 땅이 있어야 했다. 자유의 나라라는 미국조차 먼저 이주한 사람들이 차지한 땅으로 인해 뒤에 이주해온 이주민들과의 투표권 역시 땅의 보유 여부에 부여되었다.


정치와 정권이 만들어내는 부동산 문제는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 빛내서 부동산을 사라고 했던 전 정권의 문제와 이번 정권에서 초반에 임대사업자에게 각종 혜택을 주는 꽃길을 열어주면서 큰 격차를 벌리게 되었다. 사실 2008년의 리먼브라더스발 금융위기는 부시 정권에서 시작된 것이다.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해 부동산이 없었던 히스패닉, 아시안, 흑인들에게 집을 가질 수 있다는 약속을 해주었다. 그 결과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은행에서 담보로 집을 장만할 수 있었다. 이때 쓰레기와 같은 금융 제약을 풀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능력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이건 실제로 있었던 사례다. 1970년 대생들은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대학을 보내려고 노력하기 시작한 세대들이다. 한 사례를 보면 어떤 한 사람은 능력과 상관없이 부모가 교육의 가능성 따위는 인정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공고를 보낸다. 그렇지만 어떤 한 사람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인문계로의 진학을 권했다. 능력주의 사회란 학벌이 기반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부모의 무지로 능력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기회를 이미 박탈되어 버린 데다 돈도 없어서 부동산 시장에 늦게 진입하게 되었다.


학력주의 편견은 능력주의적 오만의 한 증상이기도 하다. 공평과 공정을 이야기하는 시사 프로그램조차 학력이나 집안을 말하면서 엘리트를 언급하는데 바뀔 수 있을까. 어떤 학위가 품격 있는 직업과 사회적 명망의 조건으로 사회를 만들어가니 고학력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줄어들어가고 있다.


부동산 가격과 주식 가격의 상승을 보면 상대적으로 주식 가격이 높게 상승되었지만 왜 부동산이 더 많이 올랐다고 생각할까. 그건 부동산은 보통 사면 투기꾼을 제외하고 5년 혹은 10년을 그냥 놔둔다. 필자의 경우를 예로 들면 부동산을 구입한 시기 대비 60% 정도 올랐는데 수익률로 보면 년에 7% 정도는 될 듯하다. 그런데 주식은 그것보다는 더 올랐는데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주식은 사두고 매일매일을 보기 때문이다. 주식은 투기의 대상으로 보고 부동산은 자산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바뀌지 않는 이상 반복될 뿐이다.


가치는 중요하지 않고 돈을 얼마나 버는지에 대한 것만 집중하면 결국 남는 것은 없다. 기업의 성장은 일정한데 널뛰기를 할 이유가 없는데 총성 없는 전쟁 속에 도박만 할 뿐이다. 이 모든 현상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능력이 무의미하고 공정하다는 착각이 현실임을 알 기 때문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천 개의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