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누군가와 연결이 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사람은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은 세상이라도 단절된 것이 아니라 연결이 되어 있다. 무엇으로 사는가를 아는 이들에게 물어보기도 하지만 속 시원하게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세상 사람들은 왜 그렇게 질문을 꺼려할까. 답을 원한 것이 아닌데도 자신만의 해석을 곁들여서 조언을 해주려고 한다. 지금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현실적이지 않아 보이지만 믿는 것이 좋다. 사실이니까.
한 번 해보니 두 번은 조금 더 익숙해졌다. 처음에는 비현실이라고 생각했는데 두 번째가 되니 조금은 능숙해졌다고 할까. 옛날에 유선전화 외에는 전화의 수단이 없었을 때는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이성에게 말을 걸었던 폰팅이라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지금은 대부분 채팅앱 등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자신의 기록도 흔적도 남기지 않는 채팅으로 인해 많은 사회적 문제가 야기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과거가 더 낭만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10대로 보이는 그녀는 의외로 경계심이 크지는 않았다. 양방향이 되지 않아야 될 라디오라는 소통수단 때문이었을까. 나이가 들고나서 10대 여자와 진지하게 이야기해본 것이 처음이었다. 부모의 가정교육이 잘되어 있는지 몰라도 대화를 하는 그녀의 태도는 예의가 있었다. 엉뚱한 것에 관심도 많았고 때때로 던지는 질문이 의외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제 고등학교에 올라가게 되는 거네요. 여학생들은 친구와 대화를 하면 정말 그렇게 오래 하나요?" "그럼요. 한 번 전화하면 밤에 3~4시간은 금방 가는걸요.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어도 그냥 계속할 말이 계속 있는걸요." 스마트폰을 들고 2~3시간을 통화했을 때 접힌 팔꿈치가 무척 아프게 느껴졌던 기억이 났다. "그럼 잠은 언제 자요?" "낮에 자면 되죠. 지금은 방학이니까요." 코로나 19에 학생들의 방학은 어떤지 물어보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런데요. 아저씨 아저씨가 맞죠?" 나이 차이가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왠지 아저씨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뭐 원빈 주연의 아저씨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저기요보다는 나으니까. 편한 대로 불러요."차마 오빠라고 불러다는 부탁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원빈 주연의 아저씨요?" 그녀는 아직 그 영화를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런 영화가 있었어요."
"아저씨는 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갑작스러운 질문이라서 당황스러웠다. "첩이요? 아~ 그게 별 생각은 안 해봤는데요. 사랑하는 여자 외에 누군가가 더 있기를 바라본 적은 없어서요." 반대편에서 10대 소녀만의 쾌활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 제가 한국사를 좋아하는데요. 조선의 역사에서 후궁이 있었잖아요. 과연 남자는 공식적으로 여러 여자가 있으면 좋을까란 생각이 들어서요." "글쎄요. 그 시대는 왕에게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없었으니 가능할 수도 있었겠죠." 그녀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 예측이 가지 않았다.
"우리 집은 아빠가 엄마에게 잡혀 살거든요. 만약 아빠에게 그런 엄마가 여럿 있다면 정말 불쌍할 것 같아요." 그녀의 생각은 색다른 관점이었다. 보통 그런 시대의 남자들을 탓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생각해보니 여자 한 명과 사는 것만 해도 무척 버거울 것 같았다. "그러면 아저씨는 여자 친구가 있어요?" 그 이야기는 지금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연애 역사이야기는 별로 재미없을 거예요. 다른 이야기 하는 게 어때요." 그녀는 쿨하게 화제 전환을 했다.
"저는 좋아해 본 남자애는 있었어요. 어른들이 생각하는 그런 것은 아니었고요. 그냥 좋은 친구관계였어요. 생각이 잘 통했거든요.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남자애들 중에서 문학을 아는 애였어요. 맨날 게임이나 하고 시시한 놀이를 하면서 재미있어하는 남자애들에게는 관심이 없었거든요." 그녀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무언가 동시대를 살았을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그럼 지금도 만나고 있는 거예요. 아 있었다고 했지." "전학을 가면서 자연스럽게 헤어졌어요. 전화통화도 쉽지 않고요." 지금 같은 시대에 전화통화가 쉽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공부에 집중하고 있는 것일까.
사람은 과연 무엇으로 사는가. 무엇으로 살아가면 행복할까. 그녀는 모든 것이 다 새로웠고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그녀에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묻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였다. 나는 그때에 어떻게 살았는지 곰곰이 돌아보았지만 딱히 기억에 남는 것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