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렇게 사는 거야~
"깨닫는 자에게는 날개가 있다고 하잖아요."10대의 소녀가 말하기에는 참 심오해 보이는 말이었다. "생각한 말이에요? 아니면 어디에서 나온 말이에요?" "아 힌두교 성전의 해설서인 브라흐마나에 나오는 말이에요. 저도 우연하게 읽은 책에서 나온 무구인데 항상 생각하면서 살려고 하고 있어요."
학교 다닐 때 필요에 의해서 읽을 때 말고는 의지에 의해 책을 많이 읽어본 적이 없어서 좋다는 문구는 어디에서 주워들은 것 외에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주체적으로 생각을 하면서 살았기보다는 주체적으로 생각되며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에 비해 생각이 많이 성숙된 거 같네요. 내가 그 나이 때에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요." 라디오 건너편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약간은 잡음도 들어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소리가 얼핏 들리는 느낌도 들었다. "그렇지도 않아요. 그냥 어릴 때 엄마가 요가를 했었는데요.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고 제가 하는 것에 대해 옆에서 바라보면서 있어주었거든요. 누가 말했더라? 자세 이야기를 하면서 당신은 순수한 의식이고 지각이며,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목격자니 당신은 자유롭고 행복하다라며 너 또한 그렇다고 말했던 게 인상적이었어요."
그런 생각까지 하면서 운동하는 사람은 많지가 않을 텐데 갑자기 책이 읽고 싶어 졌다. 책이란 게 갑자기 읽고 싶다고 해서 읽어지는 것도 아니고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어린 친구에게 배우고 있다는 느낌이 들으니 약간 부끄러워졌다. 지금까지 그냥 살았을 뿐이지 깨달았던 적이 있던가.
"좀 전에 이야기한 것과 이어진 건데 나중에 어떤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요"
"왜 결혼을 가정하고 말씀하세요? 결혼은 그냥 선택일 뿐 전 완성이나 괜찮아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보통 성인이 되면 결혼이라던가 가정이라던가 그런 걸 생각하잖아요."
"자유롭고 행복한 가운데 그 사람과의 소통과 서로를 성장시키지 않고 그냥 사는 것이라면 뭐하러 결혼을 해요. 경제적인 것이 부족하다면 그럴 수도 있겠죠. 항상 실수는 거기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보통 알던 10대와는 전혀 달랐다. 아니 원래 여자들은 어릴 때 저런 생각으로 살다가 변하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결혼은 내 시선보다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선택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스스로가 선택하면서 살 수 있는데 우리는 왜 결혼이나 출산을 사회와 다른 사람에게 강요받는 경우가 많을까? 그게 괜찮아 보인다고 사람들이 말하고 누군가가 자꾸 이야기하니까 무의식 속에 자신도 모르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 비혼 주의자 뭐 그런 거예요?" 다시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그런 건 아니에요. 저를 성장시킬 수 있고 평온해질 수 있다면 결혼도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말을 하는 그녀의 아버지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럼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엄마와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어요. 돈에 대한 자제력이 있는 분이셨고요. 경제적으로도 괜찮게 살아왔기에 저도 이렇게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린애가 뭐가 이렇게 철학적이고 생각이 깊은지 놀랍기까지 했다. "정확하게 돈에 대한 자제력이란 게 뭐예요?" "남들의 관점에서 돈을 생각하지 않는 게 자제력 아닐까요? 그러니까 어떤 것을 더 가지고 더 많이 벌려고 하고 더 좋게 보이려고 하다 보면 욕심이 생기는데 아빠는 그 균형이 있었다고 할까요. 돈에 대해서 별로 이야기를 하시지도 않았어요."가정환경이라는 것이 괜히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대단하신 분이었네요. 보통 남들이 얼마나 더 가졌다고 하면 욕심이 생길 수밖에 없을 텐데요."
먹고사는 것은 중요하기는 하지만 어떻게 사는지에 대한 고민보다 잘살지에 대한 고민만 하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갑자기 지금이 꿈과 같이 느껴졌다. 그런데 꿈이 아니란 게 확실한 것은 잘 볶은 커피콩으로 만든 커피 향이 코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리얼한 커피 향이 느껴지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나도 나중에 만약에 결혼한다면 그쪽 같은 사람과 하고 싶네요." "그쪽이요? ㅎㅎㅎㅎ 그냥 너라고 해도 괜찮아요. 아저씨도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모르지만 저는 괜찮아 보이는데요."입맛을 다시는 소리를 잠시 냈다. "잘 살아왔는지는 모르지만 그냥 그렇게 살아오기는 했네요. 혹시 어떤 일을 하고 싶어요?" 이 물음에는 잠시 시간이 흘러갔다. "솔직히 글을 써보고 싶기는 해요. 그런데 엄마가 그 길도 좋기는 하지만 쉽지 않은 길이라고 해서 고민 중이에요." "역시 그래서 남달랐구나." "꼭 그렇지도 않아도 유명한 작가들은 모두 일상의 단조로운 반복에서 출발했을 뿐이니까요. 그냥 시간을 잘 보내면 되지 않을까요?"
책 한 권을 읽는 것 자체가 힘든데 남들이 보는 글을 쓴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울까. "힘들겠지만 멀리서 마음속으로 응원을 해볼게요." "감사해요. 저는 브리짓 라일리가 말하는 것처럼 새가 노래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처럼 예술가는 살아 있는 것 자체에 뭔가를 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 소녀는 대체 그런 말들을 어디서 읽고 들었는지 경이롭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