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의 장선리 유적
개인적으로 돌아다니는 곳이 사람이 거의 찾지 않는 곳이어서 사람 흔적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지가 않다. 가끔 차량이 세워져 있기도 하는데 어떤 이유로 이곳을 왔는지 궁금할 때 있다. 얼마나 많이 돌아다녔는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은 대부분 한 번 이상 방문했다. 장선리 유적이라는 이정표를 보고 혹시나 하고 왔는데 4년 전에 와본 적이 있던 곳이었다.
선사/청동기 시대의 유적으로 2000년 충남 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에서 진행한 천안-논산 간 고속도로 하행선 휴게소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하던 중에 발견된 장선리 토실 유적이 현재 보존되고 있다.
사람이 정말 특별하다는 것 중에 하나는 기록을 남기고 그것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동물들도 환경에 따라 진화는 하지만 선조들의 기록을 토대로 문명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생물학적인 종의 분류에 따르면 인간의 학명은 호모 사피엔스로 한국에서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지금에 남아 있는 선사시대의 흔적들은 이미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고 나서의 흔적들이다.
이곳을 토실 유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원삼국(마한) 시대 흙방〔土室〕유적 때문으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 9월 11일 사적 제433호로 지정된 곳으로 발굴된 유적 및 유물은 주거지 4기, 원형 유구 30 여기, 돌널무덤〔石棺墓〕1기, 독널 무덤〔甕棺墓〕1기가 있으며 붉은 간 토기〔赤色磨硏土器〕등을 비롯하여 다수의 부여 송국리형 토기와 석기가 출토되었다고 한다.
공주의 석장리 유적처럼 구덩 주거지에는 평면 말 각방형 내지는 장방형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내부에 들어가면 화덕자리〔爐址〕, 벽도랑〔壁溝〕시설, 기둥구멍〔柱孔〕이 확인되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화석 인류는 약 7000만 년 전의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다. 이곳은 발견되고 나서 2001년 9월 사적 제433호 ‘공주 장선리 토실 유적’으로 지정된 후, 2011년 7월 ‘공주 장선리 유적’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사람들을 살펴보면 발전하기 위한 발걸음을 하는 사람들은 극소수다. 심지어 책을 읽는 사람들도 더 적어지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가 장선리 유족처럼 흔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에는 직립 이족 보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직립 이족 보행의 가장 큰 단점은 빠르게 달릴 수가 없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사람에게 두 손이 자유롭게 된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