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의 한적한 곳에 자리한 장충범 신도비
연구도 오래 하고 머물기도 해 보면 새로운 것들이 보이지만 한정적인 시간 내에서 무언가를 발견해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특히 코로나 19로 사람이 모이는 것이 모두 자제되고 축제나 행사가 모두 열리지 않을 때는 사람과의 접촉이 어렵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활동하기에 조금 자유로울지 알았는데 지속되니 영향을 받고 있다. 우선 행동 자체에 제약이 따르니 심적으로 부담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기분 탓인지 몰라도 요즘에는 몸이 부실해지는 느낌이 더 많이 든다. 사람을 조심하고 멀리하다 보니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느낌이 색다르다. 음성의 한적한 곳을 지나다가 우연하게 정자나무가 눈에 뜨였다. 그 옆에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기에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본다.
삼생리라는 곳의 구휼에 앞장섰던 장기량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1971년에 세운 기념비라고 한다. 어떻게 살았는지 비의 옆면과 뒤에 쓰여 있었다. 삼생 3리는 음성읍에서 서쪽으로 10km에 위치해 있는 아담한 마을로 금계 장기량 선생 공적비는 일제시대 덕생 학교 설립에 힘썼고, 1953년 전쟁 후 극심한 가난에 빠진 주민들에게 식량을 풀어 구제했던 장 선생의 공적을 기념하는 비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장충범 신도비와 장기량 기념비로 볼 때 장 씨의 집성촌이 이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어딘가에 그 흔적이 있지 않을까.
국도변을 가다 보니 단양 장 씨에 대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단양 장 씨(丹陽張氏)는 같은 본관(本貫)이면서도 계보(系譜)를 달리하는 두 계통(系統)이 있다고 한다. 이 비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단양 장 씨인 장충범의 신도비가 있다.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단양(丹陽). 장언구의 아들로, 음보로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를 지냈던 사람이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주(忠州)에서 적과 싸우다 부상당하고 향리(鄕里)인 삼생리에 와서 치료하였다. 그 후 1597년(선조 30)에 창의현 생극면 생리 구진터에서 왜병과 싸우다 전사했던 장충 범의 신도비가 저 위에 있다.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 산소날에 있는 장충범( ? -1597)의 묘소 입구에 세워진 신도비는 조선의 충신으로 본관은 단양, 자는 효칙. 임진왜란 군자감 주부로서 왜군과 싸우다 부상하고 선조 30년(1597년)에 삼생리 구진터에서 왜군과 분전하다 순국한 것을 기리는 것이다.
장충범은 사후에 선조 38년(1605년)에 전지로 녹권이 하사되고 철종 8년(1857년)에 이조참판에 증직되고 선무원종훈의 충신정려가 내려졌다. 신도비는 김학수가 글을 짓고 김필한이 쓰고 윤용구가 새겨서 세웠다. 1857년(철종 8)에 증이조참판선무원종군(贈吏曹參判宣武原從軍)의 충신정려(忠臣旌閭)가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