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짓기의 철학

집이란 무엇이고 어떤 의미인가.

원래 좋은 집이라는 것과 살고 싶은 집이라는 의미 속에는 가격이라는 것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고층이나 초고층 아파트는 마치 부속품처럼 느껴져서 선호하지 않는다. 적당한 공간과 동 간 거리 그리고 열린 공간이라는 느낌이 답답하지 않고 좋다. 고택이든 현대의 아파트가 든 간에 내부에는 두 종류의 공간이 있다. 가족이 공유하는 공간과 개인이 전유하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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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는 쌀이 많이 나는 곳이고 역사도 오래된 곳이지만 지금까지 온전한 형태의 고택은 많이 남아 있지가 않다.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11호 장화 쌀뒤주가 있는 이곳은 김제시 맛조이 지정농가로 때만 잘 맞추면 한옥 스테이를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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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수 고택의 바로 앞에는 효열각이 있다. 이 전각은 효(孝)와 열 행(烈行)을 기리는 효열각(孝烈閣)으로 효녀가수 현숙 (鄭賢淑 32世)의 고향이기도 한 이곳 장화 집성촌은 대호군공파 종인의 25%에 달하는 정효손(鄭孝孫)공의 후손들이 번창한 역사의 본원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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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세워져 있는 효열각 보수 정화기도 잠시 살펴본다. 이 집안을 빛내주신 효자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그 기록을 새겨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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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들어오면 먼저 보이는 장화 쌀뒤주다. 1976년 4월 2일 김제시 지방문화자료 제11호로 지정을 받은 장화 쌀뒤주는 덕망가로 멀리 조정까지 알려진 정준섭(鄭峻燮, 일명 정구례-鄭求禮)은 많은 식객(食客)의

양식을 보관하기 위하여 초대형(쌀 70가 마의 용량) 쌀뒤주를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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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식객들을 맞이하기도 했는데 직접 들어가 보니 살림살이가 있는 것이 지금도 주거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1888년(高宗 25年)에 삼남(三南) 지방에 극심한 흉년이 들어 굶어 죽는 이 가 속출하므로 정준섭은 고을마다 쌓아놓은 노적을 모두 풀어 주민들을 구하니 이러한 아름다운 미담(美談)이 조정까지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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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황제는 정준섭을 구례(求禮) 현감(縣監)으로 임명하니 선정을 베풀고 백성을 보살피니 그때부터 정구례(鄭求禮)라 불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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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의 사랑방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을 오늘날의 거실이라고 볼 수 있다. 영국에서 유래가 있는 리빙룸은 불이 타오르는 방에 모여 요리를 하고,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행동양식은 다르겠지만 정종수 고택에 들어서자마자 나오는 건물은 그런 역할을 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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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하게 대청에 앉아서 마당을 바라보았다. 고택에서의 문은 이동하고 싶은 사람의 마음을 따른다. 문을 열고 닫는 일뿐만 아니라 일어서고 앉은 등의 일상적인 동작에서도, 사람은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일련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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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포시 문을 여서 안을 바라보았다. 고택의 좋은 점은 요즘같이 확장이 되어 나오는 아파트에는 없는 처마가 있어서다. 지붕의 연장인 처마는 비를 막는 것과 동시에 햇볕이 들어오는 양을 조절하는 양산의 역할도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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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어보고 싶게 만들며 한국관광공사에서 추천한 “정종수 고택(鄭鐘洙 古宅)”은 1859년에 세워졌으며 한옥 체험지로 민박도 가능하며 지금은 아들 정주철(鄭柱喆)씨가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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