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규섭 가옥

의금부도사를 임했던 안기원의 집

충청남도에 남겨진 가옥 중에 네비라던가 기록으로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근처까지 가면 이정표를 통해 알 수 있는 충청도 서북지방의 부농 가옥인 송규섭 가옥이 있다. 원래 이 가옥은 1850년경 의금부도사를 역임한 안기원이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곳을 가실 분들은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바라미길 18-11을 입력하고 가면 갈 수가 있다. 가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순간 가옥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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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이정표만을 보고 찾아 들어갔다가 찾지 못하고 돌아간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는 다른 길로 들어가서 이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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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트인 공간에 자리한 가옥이다. 전체적으로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곳간채가 이어져 있어서 전체적으로는 ㅁ자형의 고택 형태를 가지고 있다. 원래 이곳을 지은 안기원은 자신의 아들인 안종화를 위해지었다고 한다. 안 씨 집안의 이 주변의 상당한 농지를 가지고 있었던 부농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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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원은 의금부 도사를 지냈던 사람인데 굳이 현대식 조직으로 생각해보면 중앙정보부와 감사원의 중간 정도의 역할이라고 할까. 국왕 직속 사법기관인 의금부는 내부 기강이 강했으며 신참과 선배 관원 사이의 위계를 엄격히 하고, 결속을 다지기 위한 혹독한 신고식인 면신례 관행이 오랫동안 남아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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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와서 하늘을 바라보니 여름의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말복이 지나가면서 여름의 온도는 한풀 꺾일 전망이다. 경국대전에서 의금부 당하관은 경력과 도사를 합쳐 10명을 둔다고만 규정한 것을 보면 지금같이 정보부나 기무사의 폐해를 만들 정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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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의 안쪽으로 들어가 본다. 안 씨 집안에서 거주했던 이곳은 100여 년 만에 송도원 씨가 이 가옥을 매입하였고 지금은 송규섭 씨가 이곳에서 거주하고 있는데 그래서 송규섭 가옥이라고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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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가옥의 규모가 큰 편이다. 조선의 후반기에 지어졌는데 풍수지리가들이 이곳은 풍수지리적으로 왕이 탄생하는 명당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미 대원군이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예산에 자리한 가야사를 불태우고 아버지 남연군 묘를 썼으니 기회는 놓친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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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에 충남도 문화재나 시 향토유적으로 지정된 곳은 3군데로, 송악에 위치한 ’ 송규섭 가옥‘, 합덕의 ‘정(丁) 자형 가옥’, 우강의 ‘한갑동 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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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을 시원하게 열어두어서 그렇게 덥다고 느껴지지는 않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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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마루에 잠시 앉아서 마당을 내려다본다. 조선 말기에 의금부도사를 보내고 이곳에서 여행을 보냈던 안기원은 조선의 변화를 예측했을까. 그가 떠나고 의금부는 1894년(고종 31) 갑오경장 때 의금사로 이름이 바뀌고 법무아문(法務衙門)에 속하였다. 다음 해에 고등재판소(高等裁判所)로 바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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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그의 가문에도 부침이 있었다. 변화하는 시대에 그 많은 재산이 사라지고 결국 다른 길을 걸었다. 그리고 지금은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당진 대표 고택 중 한 곳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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