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찾은 구미 채미정
"옳은 것을 바르게 행하되 그에 따른 이익을 도모해서는 안되고, 도리를 밝히되 그에 따른 성과를 따져서는 안 된다." - 동중서
동중서에서 나온 이 말을 참 좋아한다. 그걸 행하는 사람이 많지가 않아서 더욱더 그러하다. 균형적으로 삶을 선택하면서 다채롭게 사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던가. 11세에 냉산(冷山) 도리사(桃李寺)에 들어가 글을 배우기 시작했던 야은 길재의 흔적을 찾기 위해 채미정을 찾았다. 충청남도 공주에 있는 동학사(東鶴寺) 경내의 「삼은각비문(三隱閣碑文)」에 삼은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5백 년의 역사에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는 말이 정말 그런 듯하다. 지금도 그렇다. 채미정은 1768년(영조 44)에 창건되었으나, 1977년 구미시에서 건물을 보수하고 경역을 정화하는 사업을 크게 시행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산하가 그렇게 펼쳐져 있다. 푸르른 나무들을 보는 것만으로 사람의 마음이 역시 동한다는 생각이 든다. 걷기만 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좋아지는 것을 쉽게 이해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길재가 포함되어 있는 삼은이야말로 당시 학계에서 경술·문장·사가(史家)를 겸한 삼거 벽(三巨擘)이었다. 야은 길재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不事二君).”라고 해 새 왕조에서 벼슬하지 않고 경상도 구미의 금오산(金烏山) 아래에서 자제를 교육하였다.
측은하게 생각하는 마음은 인의 단서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의의 단서이고 사양하는 마음은 예의 단서이고 시비를 가리는 마음의 지의 단서라고 한다. 이해득실을 계산한 결과 나온 의도적인 행위가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본능적인 행위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때다.
야은 길재를 보면 인을 행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인에 머무는 것이 좋다. 스스로 선택함에 인에 머물지 않는다면 어떻게 지혜롭다 하겠는가. 다른 사람에게서 좋은 점을 받아들여서 선행을 실천하는 것은 그 사람이 선행을 실천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삶을 어떻게 사는 것에 대한 정답은 없지만 남녀노소와 서로에게 공정하게 바라보고 평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마땅히 그렇게 대접받을 사람은 없다.
야은 길재는 조선이 개국되고 나서 다시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는데 1403년(태종 3)에는 지군사 이양(李楊)이 길재를 방문했다가 그의 농토가 메말라 생산이 별로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좋은 전답을 선사했으나, 사는 것을 충당할 수 있을 만큼 조그마한 땅만 차지하고 나머지는 되돌려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