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이 좋은 지형이라는 지역
작년 어머니가 이사 간 곳의 향이 정남향이 아닌 데다가 고층으로 지어져서 해가 드는 시간이 적은 편이다. 해가 드는 시간이 사람의 행동과 정신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굳이 체험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정남향의 집이 인기가 있고 전망보다는 낮은 층이라도 해가 들어오는 시간이 많은 것이 좋다. 그렇게 볕양이라는 한자는 살기 좋은 곳에 사용이 된다.
벌곡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자리한 양산리라는 곳은 볕양을 사용하는 지명의 마을이다. 그래서 무지개마을이라고 불리는 곳이기도 하다. 최치원이 많은 곳을 돌아다니다가 이곳의 산세를 보고 찬사를 했다고 한다. 좌청룡, 우백호로서 북서쪽은 높은 지대이고 동남쪽은 낮은 지대여서 수원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름으로써 거주지로 신선지라고 불렸다고 한다.
양지쪽의 양자와 산맥의 산자를 따서 양산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지며 양산리라고 부르고 있다. 지금 살고 계신 분들의 연령대가 높은 편이긴 하지만 고즈넉한 것이 마을의 특징이기도 하다.
본래 연산군 벌곡면의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고월리, 장자동, 구고운리, 공수산리일부를 병합하여 양산리라 하여 논산군 벌곡면에 편입하였다고 한다. 구고운리의 고운은 최치원의 호이기도 하다. 고운사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고운사 사지의 부도만 있다고 하는데 석종형 부도로 기단석과 탑신으로 조성되어 있는 그곳에 최치원이 말년을 보냈다고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전국을 다니다 보면 고운 최치원이 말년을 보냈다는 곳을 여러 곳 보았는데 양산리의 고운사를 비롯하여 어디에서 살다가 신선이 되었을까.
마을은 양산리의 이름을 딴 양산천이 흐르고 있고 마을을 중심으로 옛길, 어울림길, 무지개길, 뾰족산 길이 조성되어 있다. 거주하는 분들은 많지 않지만 조용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오래된 마을의 길을 걷다 보면 확실한 건 본인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은 남아 있다는 것이다. 고운 최치원이 좋은 지형의 땅이라고 했던 벌곡의 양산리를 비롯하여 전국을 돌아다닌 것은 직접 행동한 것이었다. 무지개 마을의 구석구석에 있는 오래된 물건들과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그런 생각이 담겨 있다.
요가에서 아쉬타바크라아사나라는 자세가 있다. 일명 팔각 자세로 두 손에 균형을 맞추고 비틀어진 상체를 팔꿈치에 지지하며 다리를 공중에 올리는 자세다. 이는 아쉬타바크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비롯이 되었는데 배 속에 있을 때 아버지가 베다를 산스크리트어로 암송을 할 때 실수를 듣고 바로잡아도 되냐고 묻자 아버지는 여덟 군데가 비틀린 채 아쉬타바크라로 태어나게 했다고 한다. 그렇게 태어난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올바른 가르침을 전했고 왕의 스승까지 되었다. 이에 아버지는 그의 기형을 없애고 원래의 형상으로 만들어주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