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길

나라 있는 줄 알고 내 몸 있는 줄 몰랐노라

경상북도의 고령이라는 지역은 아는 사람이 많지가 않은 지역이다. 대구 옆에 달성을 지나 나오는 고령이라는 지역은 조용하면서도 한적한 곳이다. 살고 있는 곳에서 먼 지역이나 다른 지역을 가는 이유는 삶이 다채로워지기 때문이다. 한 번 인생을 사는데 참 많은 것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몸이 바쁘게 만드는 방법뿐이 없다. 경주 최 씨의 시조라는 고운 최치원이 그토록 세상을 돌아다닌 이유가 아닐까. 통일신라 말기에 뼈에 등급이 있다는 한계에 직면해 있었으며 기득권들은 더욱더 욕심을 낼 때 자연으로 눈을 돌렸다.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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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군을 돌아다니다가 김면장군의 유적지를 다시 찾아가 보았다. 현재 경북 고령군 쌍림면 고곡리 26번지에 있는 이곳은 경상북도 기념물 제76호로 지정된 도암서원(道巖書院)은 김면장군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유적지다. 1666년(현종 7) 사림에 의해 시임 조봉원(趙逢源) 현감의 협조를 얻어 고령읍내에 시창(始創)해 송암 김면 선생과 옥산 이기춘(李起春) 선생을 제향 하였다. 1789년(정조 13) 서원 주변에 시장이 있어서 번잡하고 불리하여 송암 김면 선생의 선산 아래인 현 위치(고곡리)로 이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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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고령읍에 있었어도 괜찮았을 테지만 이곳은 더욱더 한적해서 좋기는 하다. 1868년(고종 5)에 국령인 서원철패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03년(광무 7)에 도암 서당(道巖書堂)으로 중건한 후 2002년 5월 사림에서 뜻을 모아 도암서원을 복원하고 송암 김면 선생을 독향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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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면장군은 기린 도암서원은 부지면적 약 2,400평에 건평 118평으로 사당 3칸, 강당 5칸, 동서제 각 3칸, 누각 5칸, 기타 건물 7동 등이다. 김면장군에 대해서 알게 되었지만 김면장군은 곽재우, 정인홍과 함께 영남 3대 의병장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김면 장군이 참전한 세 번째의 큰 전쟁은 성주지역에서 벌어졌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해인 1592년 8월 19일~20일 1,2차 성주 전투는 김면 장군의 의병과 정인홍이 연합해 작전을 수행한 전투로서 의미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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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향을 올릴 때를 제외하고 김면장군의 유적지는 항상 한가하다. 사람의 모습이 없는 곳이다. 의병장 김면은 지례, 사랑암, 성주, 두곡, 변암 등 크고 작은 30여의 전투를 치르면서 주야로 갑옷을 벗지 않았던 사람이다. 다른 전투에서 김시민 장군은 김면 의병장의 원병 요청을 받고 정병 1천여 명을 이끌고 이에 호응, 거창의 사랑암에서 금산으로부터 서남진 하는 왜적을 맞아 크게 무찔렀는데 이후 1차 진주성 전투에서 승리했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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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길은 똑같을 수 없고 누구나 제각기의 길을 걷지만 적어도 공동체나 공동의 선을 위해 걸었던 사람들이 더 우대받는 사회가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사회를 보면 그런 사람이 아니라 사적인 목적으로 사익을 편취하는 사람들이 더 우대받는 사회가 되는 것 같아 심히 염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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