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적인 느낌의 신리성지
신리성지에서 본 풍광에서 단다(danda)가 생각이 났다. 단다는 힌두 신화에서 막대 또는 지팡이를 의미하는데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단다는 정당한 권위를 상징하며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세계의 축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요가 자세에서 단다아사나는 막대 자세 혹은 지팡이 자세를 의미하며 이때 단다는 척추를 상징한다. 막대 자세는 척추와 다리를 곧게 펴고 앉는 자세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적이지만 내부에서는 수많은 움직임이 일어난다.
하늘과 땅을 연결해주는 것 같은 조형물이 신리성지에는 조성이 되어 있다. 조선 천주교 교회의 요람이라고 불리는 신리성지에는 손자선 생가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집 모양으로 만든 성인들을 위한 기도처도 5곳이 있고, 십자가의 길 14처가 지름 1미터 가까운 바위에 예수가 판결을 받는 장면부터 차례로 14개가 있다.
처음에 왔을 때보다 건물들이나 조형물이 하나씩 더 생겨나고 있다. 손자선 성인의 순교 이후 그 시신이 신리의 선산에 묻혔는데 이름이 알려져 있는 33분의 순교자 외에도 성지 인근에는 ‘32기의 목이 없는 무명 순교자 묘’와 ‘14기의 손 씨 가족 무명 순교자묘’, 그리고 해미에서 순교하였다고 전해지는 묘 3기가 있다.
이곳도 발굴되어서 복원된 순교자의 흔적들도 있다. 카타콤바는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이 첫 3세기 동안 죽은 이들을 묻던 지하 무덤이기도 한데 박해 시대 피난처로도 사용되었고, 미사와 전례가 이곳에서 거행되기도 했었다. 그래서 천주교에서는 신자들이 세상을 떠난 성지는 남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아가면서 성지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카타콤바에는 하느님에 의한 구원, 천국에의 희망을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것들로 구세(救世), 내세의 신앙, 그리스도의 신성(神聖), 세례, 성체, 죽은 이를 위한 전구(轉求), 모든 성인의 통공(通功)들을 표현하고 있다.
이 돌다리가 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조금은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신자들에게는 순례길이지만 일반 사람들에게도 걷기에 좋은 곳이기도 하다.
한국 천주교 신앙공동체는 1784년 평신도만으로 세워졌다. 100여 년 동안의 박해를 겪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버리고 깊은 산속에서 소규모의 신앙공동체를 이루기도 하였으며, 이름도 남겨지지 않는 무수한 순교자가 되기도 했다.
이곳 복원된 생가(주교관)의 기둥과 뼈대는 옛날 그대로이다. 대들보, 서까래, 주춧돌, 문지방 디딤돌, 집 지은 연도를 적은 상량문 등 상당 부분의 실물들이 그대로 사용되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단다아사나는 몸의 중심을 바르게 만들어준다. 척추의 중요성은 의료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바르게 걸으면서 충청남도에는 사제가 상주하고 있는 이곳 신리성지를 포함하여 해미 무명 순교자 성지, 솔뫼성지, 합덕성당, 공세리 성당, 덕산성당, 고덕 성당 등이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