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의 미숭산 자연휴양림
핀란드 하면 껌도 생각나지만 자작나무도 연상이 된다. 영하 20~30도의 혹한을, 그리 두꺼워 보이지 않는 새하얀 껍질 하나로 버티는 자작나무는 북유럽과 잘 어울려 보인다. 자작나무는 보온을 위하여 껍질을 겹겹으로 만들고 풍부한 기름 성분까지 넣어 두었는데 두께 0.1~0.2밀리미터 남짓한 흰 껍질은 매끄럽고 잘 벗겨지므로 종이를 대신하여 불경을 새길 때도 사용하였으니 팔만대장경 이운순례길의 고령과도 잘 어울려 보인다.
고령으로의 여행은 오랫동안의 동경과 망설임 끝에서야 비로소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아직은 허허롭고 황량한 그 풍경들이 문득 내 일상에 찾아들기도 했다. 미숭산 자연휴양림의 입구에는 자작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자작나무는 시인 백석의 시에도 등장한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山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甘露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山너머는 平安道 땅이 뵈인다는 이 山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오래간만에 이곳에 와보니 위쪽에도 숲 속의 집이 조성이 되어 있었다. 주말이어서 그런지 휴양림의 방들은 모두 사람들이 있었다. 멀리서 고기 등을 구워먹는 사람들을 보고 미숭산을 걸어서 돌아본다.
차량의 밖에 나와보니 옷깃 속으로 불어오는 신선한 봄바람이 코끝을 간질이고 있었다. 날은 저물었지만 저 멀리 보이는 자작나무를 보면서 핀란드에 와 있다고 상상해본다. 자작나무 숲에 이는 바람은 삶의 바람이다. 결혼식에 불을 켤 수 있는 나무란 뜻으로 ‘화혼(華婚)’이라 했고, ‘화촉을 밝힌다’라는 말도 자작나무 껍질에서 온 말이기도 하다.
고령의 곳곳에는 바닷물에서 2년 바람결에서 1년을 보냈다는 팔만대장경의 이운순례길 이야기가 있다. 자작나무의 사이로 부는 바람과도 닮아 있다. 자작나무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다가 다른 나무가 자라기 시작하면 그 땅을 주고 사라져 버리며 수명도 100년 정도에 불과하다.
깔끔하면서도 사람들에게 필요한 재료를 모두 주는 자작나무는 고상해 보인다. 그리고 사라짐도 조용하게 없어진다. 황백색의 깨끗한 색깔에 무늬가 아름답고 가공하기도 좋아 가구나 조각, 실내 내장재 등으로 쓰이며 펄프로도 이용하기에 자작나무 가구도 인기가 많다. 아름다운 관계를 위해 화촉을 밝힐 때 자작나무를 사용한 것처럼 사람의 삶도 그러하면 아름답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