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야경 속으로 떠나는 면천읍성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한 지가 어언 1년이 넘었다. 사람이 모여사는 사회에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줄으니 글의 주제는 당연히 좁아질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야경이나 풍경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게 된다. 복원되었고 잔디까지 곱게 깔린 면천읍성은 조명이 설치가 되어 있어서 밤에도 찾아가 볼 수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창조하고 유지하고 파괴가 된다. 마치 힌두 신화에서 브라흐마가 창조를 담당하고 비슈누가 창조한 우주를 유지하고 보존하며 우주가 끝날 때 세상을 파괴하는 역할을 시바가 하듯이 말이다.
당진시내에서도 외곽에 자리한 면천읍성이지만 면천읍성은 당진에서도 중요한 관광자원이다. 복원사업의 대상지는 당진시 면천면 몽산길 14 일원 9만8951㎡에 이르며 사업기간은 2007년부터 2024년까지 18년간에 이른다.
새롭게 복원된 성벽들이 보인다. 경남에도 산성과 관련된 관광자원들이 있는데 문화재 복원 차원에서 읍성을 제외하고 산성을 복원하기보다는 원형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흐름이라고 한다.
2020년까지 서남치성 문화재 발굴조사와 실시설계용역을 완료했으며, 면천읍성 남문 전주·통신주 지중화 공사와 서남치성 복원공사, 동참치성 및 동벽 복원, 객사복원 설계 등을 추진하고 있는 중이다. 전체적으로 읍성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구조로 변해가고 있다.
면천읍성 지역은 과거에 연암 박지원이 군수를 지낸 적이 있던 곳이다.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홍국영은 정조의 신임을 두텁게 받아 세도를 부리고 있었을 때 박지원은 한양을 벗어나 살며 손이 부르트고 발바닥이 갈라지도록 일을 해보았다고 한다. 박지원은 벼슬보다 열하일기라는 책으로 더 알려져 있다. 특히 열하일기에 담긴 허생전(許生傳)은 풍자문학의 극치를 이룬 작품이다.
스스로 생산하지 않는 사람은 먹지 말라고 외쳤지만, 글이나 읽는 선비가 농사를 짓기에는 쉽지가 않았다. 그는 일을 해보았지만 결국 선비는 선비로서의 할 일이 따로 있다고 깨달았다. 모두가 같은 길을 걸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1799년, 면천군수가 된 지 2년 뒤에 올린 농서(農書) 앞머리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소임을 맡은 이래로 농사에 관해 수령이 해야 할 칠사(七事)의 경책(警策)을 섭렵하지 않음은 아니나, 못나고 게을러서 끝내 입으로 지껄이고 귀로 들은 학學이 되어 서로 맞아떨어지지 못하고, 습속(習俗)이 안이한 탓으로 쉽게 고치지도 못해 옛 습관에 따라 다만 권농했을 뿐입니다."
면천읍성에 이렇게 조명이 설치가 되어 있지 않을 때 면천군수로서 있었던 박지원은 밤에도 많은 책을 읽고 펴내기도 했다. 박지원의 생에 있어서 후반기는 현실참여를 통해 개혁을 이룩하려는 의지가 짙게 깔려 있었다. 면천군수로서의 삶을 살기도 했던 박지원은 신분제 철폐와 함께 기회의 균등을 말했던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