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자산은 눈뜬 경험에 있다. 명재고택
미디어나 자본이 아닌 자신만의 기준으로 만들어진 방향을 같이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정말 어렵다. 이끄는 방향이 아닌 자신의 길로 걸어가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풍요롭다. 더 가질 것도 많지 않고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명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역사 속에서 이름을 남긴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 많다. 한국 사람들의 요리의 기본은 장맛이다. 간장, 된장은 그 무엇보다도 맛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시간의 맛이다. 장맛이 좋기로 유명한 집으로 논산의 명재 윤증고택이 있다.
고택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 조금씩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고택은 그냥 오래된 집이며 그냥 옛날 사람들 집이라고 생각했다가 눈이 트이기 시작하면 자연과 지형, 오래됨의 가치를 알 수 있다. 가까운 곳에 후손이 살고 있으면서 관리가 아주 잘되고 돌아보기 좋은 곳으로 윤증 고택만 한 곳도 드물다.
팔기 위해 집을 내놓지 않는 이상 수시로 사람들이 찾아와서 돌아보는 일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집이라는 것은 자신만의 공간이며 사생활이 보장되어야 한다. 명재 윤증고택에서 안채는 가장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 건물 뒤에 있는 항아리에는 아마 이 집만의 맛이 담긴 장이 담겨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명재 윤증고택의 뒤로 돌아와 보니 토실토실한 털을 자랑하며 인상은 웃는 모습의 강아지가 바라본다. 짖지도 않고 굳이 꼬리를 흔들지도 않는다. 너는 너 나는 나라는 당당함이 보인다. 물론 필자가 생각하는 대로가 아니라 그냥 귀찮을 뿐일지도 모른다.
땅 한 평도 아쉬운 이때에 저 많은 항아리들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명재 윤증고택의 주인이 아니라면 항아리마다 담겨 있는 것이 무엇일지도 추측해보기 어렵다.
사람에게 주어진 삶은 그 자체가 축복이다. 축복받은 삶은 그냥 대충 흘려보낸다면 그것만으로도 자신에 대한 직무유기라고 볼 수 있다. 명재 윤증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기록에 의해 단편적으로 볼 수 있을 뿐이다. 현재에 살고 있고 보는 사람의 삶도 제대로 보기 힘든데 그 사람의 삶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현재라는 시간 속의 무한한 작은 점의 인간의 진정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평가해볼 뿐이다.
어리숙하고 원초적인 사람일수록 생명이 물질적이며 육체에만 존재한다고 믿지만 명재 윤증처럼 깨달은 사람은 생명이 정신에서 나온다는 것을 안다. 명재 윤증은 1682년(숙종 8) 호조참의, 1684년 대사헌, 1695년 우참찬, 1701년 좌찬성, 1709년 우의정, 1711년 판 돈녕부사 등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퇴하고 나가지 않았다. 이 같이 자신의 집에서 장맛을 보면서 정신의 가치를 더 높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매번 오면 처음 만나는 것이 명재 윤증고택의 사랑채다. 그는 관료로서 개인적 사정 이외에 나가서는 안 되는 명분이 있다고 했다. 오늘날 조정에 나가지 않는다면 모르되 나간다면 무언가 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우암 송시열의 세도가 바뀌어야 한다. 자신의 역량으로 그것을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면서 내 마음에 할 수 없을 것 같으므로 조정에 나갈 수 없다고 하였다.
인생은 항상 안전함과 위험함 사이의 줄타기에서 타협을 하면서 살아간다. 솔직히 잘은 모르겠지만 명재 윤증이 율곡학파 직계가 성리학의 이론적 탐구에 몰두하고 율곡 학설의 계승에 주력하는 것과는 달리, 윤증을 비롯한 이들은 더욱 개방적인 입장에서 양명학을 수용하거나 유학 본래의 마음공부에 주력하였던 것은 마음에 와 닿는다.
결국 사람은 물과 같이 살아갈 때 가장 자연스럽다. 누구나 죽지만 죽지 않을 것처럼 욕심을 가지고 살아가며 그 테두리에 갇혀서 다른 것을 바라보지 않는다. 임금 3명이 벼슬 길에 오르라고 간청했고 제자들이 앞다퉈 집을 지어줬던 윤증이 살짝 부러워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