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의 원머리 성지를 걷다
불완전한 자신의 삶의 원칙이 다른 사람의 잘 적용되니 원칙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다르나는 사회적 우주적 질서를 의미하는데 선한 업을 쌓고 악한 업을 피하기 위해 인간이 중수해야 하는 규범이라고도 한다. 자신의 개인적 의무를 선택하고 그에 걸맞게 행동하는 것은 우주적 조화를 유지하는 자연스러움이기도 하다. 삶의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그 속에서 좋은 것만 담기는 쉽지는 않다. 이날은 당진의 원머리 성지라는 곳을 돌아보았다.
충남의 성지중에서 원머리 성지는 비교적 늦게 도지정 문화재가 된 곳이다. 원머리 일대는 조선시대와 근현대 천주교의 유·무형 유산을 간직하고 있지만,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는데 혹독한 병인박해를 겪으면서도 괴멸하지 않고 회복했던 곳이다. 원머리 성지 등 충남 천주교는 한국 천주교의 태동과 전파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곳으로 종교적 산물의 관점이 아닌 지역 역사문화자원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곳 부근은 박 씨, 문 씨, 조 씨의 집성촌이 있었던 곳이었는데 순교자 박 마르코와 박 마티아는 원머리에서 출생하였으며 종형제다라고 한다. 새터나 원머리에서 신자들이 모여 살았는데 1866년부터 시작된 병인박해의 영향이 이곳 원머리까지 이르러 2년 후 무진년(1868년)에 수원의 포졸들이 신자들을 체포하러 왔었다. 이때 배교하지 않고 순교하였다고 한다.
퀴를리에(Curlier, 南一良, 1863~1935, 레오) 신부나, 그 뒤를 이은 홍병철(洪秉喆, 1874~1913, 루카) 신부(1905년 재임), 크렘프(Krempff, 慶元善, 1882~1946, 핸리) 신부(1913년 재임)의 기록에 보면 원머리 공소는 성실한 공소였다고 한다.
삶의 방식으로 종교를 선택했던 사람들의 원머리 성지는 물이 들어오면 육지가 섬이 되었던 곳이라고 한다. 원머리 순교자 묘역은 순교자 시신이 온전히 있는 특색 있는 성지로 세계 유네스코 유형,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한 가치를 지닌 조선시대 순교자의 묘의 전형이라고 한다. 19세기 초반 내포지역은 삽교천이 신평 성당과 원머리 성지를 감싸고 있어서 마치 섬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