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의신나무골 성지
우연하게 지나는 길에 만나볼 수 있었던 신나무골 성지는 독특하게도 한옥성당을 재건축해두고 있었다. 조선 후기 영남 지방의 복음화에 헌신했던 로베르 신부는 또한 교육 사업에도 큰 관심을 기울여 속칭 ‘연화 서당’이라 불리는 신나무골 학당을 설립했던 곳이다. 신나무골 학당은 1855년에 설립된 배른 신학교를 제외하고 1884년 서울에서 설립된 한한학교와 함께 천주교 내에서는 가장 일찍 신학문을 가르쳤던 신교육 기관이었다.
이곳에 자리한 신나무골 성지의 성당은 1894년 가실 본당 소속의 공소였다가 1926년 왜관 본당에 소속되었고, 1968년에 신동 본당이 설립된 후에는 다시 신동 본당에 속하게 된 곳이다.
충청도에 자리한 일반적인 성지와 달리 이곳은 마치 영남의 가옥을 보는 느낌이 들게 했다. 성지에는 1973년 성지 개발 기금을 모금하면서 시작된 신나무골 성역화는 1977년 제1차 사업을 완수하고 영남 지방의 천주교회 선교 요람 기념비를 세워두었다.
들어가는 입구에서 처음 접하는 신나무골 성지에 대해 접해본다. 옆에는 한자로 기념비를 세워두었다.
초가집을 재현해둔 것도 독특해 보이는 곳이다. 신나무골 성지의 명상의 집은 신나무골에서 피정을 원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된 장소로서 20~25명 정도의 인원이 숙박을 할 수 있는데 신나무골 학당은 현재 소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옛 사제관과 휴게실은 초가지붕으로 표현했다.
이곳은 기념품을 구입하던가 차를 마셔볼 수 있는 곳이다.
궁궐에서만 사용되는 기법인 흰색 용마루를 성당의 팔작지붕에 활용해 성전의 품격을 높였다. 성당 옆 사제관은 우진각 지붕이며, 성당 옆 쉼터는 맞배지붕으로 만들어둔 건물이다. 나무껍질은 검은빛을 띤 갈색이며 잎이 3갈래인 신나무(Acer ginnala, 莘)는 단풍나무에 속하며, 8m가량 자란다고 한다. 처음 접해보는 나무의 이름인데 5~7월 노란빛을 띤 흰색으로 꽃이 피고, 향기가 난다.
‘신나무골’ 명칭은 골짜기 입구에 ‘신나무’가 있다고 해서 붙여졌는데 성지와 같은 순례지는 많은 신자들이 교구 직권자의 승인 아래 특별한 신심 때문에 빈번히 순례하는 성당이나 그 밖의 거룩한 장소를 의미한다. ‘성인’이 순교한 곳이나 무덤이 있으며 전례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장소를 성지(聖趾, loci sancti, holy places)라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