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환 구휼 불망비가 있는 마을
3월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날이 너무 선선해서 초겨울 같은 느낌이 든다. 춘분과 곡우 사이에 든다는 청명이 오면 날이 좀 따뜻해질까. 아침과 낮으로 온도차가 상당히 많이 나고 있다. 청명은 농사력으로는 이 무렵에 논밭둑의 손질을 하는 가래질을 시작하는데 이때는 일꾼을 구하기 힘들어서 사람을 많이 구하기도 한다. 음성의 하당리와 같은 농촌에서는 청명에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하당리에서 조금만 지나가면 있는 하당리 미륵불은 자주 보았지만 그 입구의 자혜비를 처음 눈에 뜨였다. 내비게이션에서도 나오지 않는 저 불망비는 장렬성씨 시조 성인보의 23세손이라는 성기환의 원남면하당리성기환구휼불망비다.
펜스로 쳐져 있는 이곳에는 설명이 따로 되어 있지 않다. 성균관 박사를 역임하였던 성기환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친척의 손에 자랐으며 아끼며 살았다고 한다. 경제적 기반이 생기자 지역의 자선 사업의 힘써서 지역민들의 복지를 위해 힘썼다고 한다. 당시 가난한 이웃들에게 전곡과 토지를 나누어주고 농사를 짓게 해주었다고 한다. 성기환구휼불망비는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된 팔작지붕의 비각 안에 세워져 있다.
하당리 입구의 원남면하당리성기환구흉불망비를 보고 안쪽으로 들어왔다. 하당리에는 논밭뿐만이 아니라 인삼밭도 적지가 않다. 이곳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하당저수지가 나온다.
하당리의 안쪽으로 들어오면 자생식물원을 비롯하여 저수지와 숲 체험원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음성은 아직 날이 덜 풀려서 봄꽃이 피지 않은 곳도 적지가 않다. 큰 산 자생식물원에 봄꽃을 보려고 했지만 아직 피어 있지 않아서 화사한 모습은 보지 못했다.
성기환의 구휼은 농업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인간이 선택한 몇 개의 종을 대량으로 생산해서 문명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살아가는 방식이 농업이다.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농업이나 인공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인간의 문명이다.
이곳은 한남금북정맥에 속하는 곳으로 불망비가 있는 하당리에서 신천리, 초천리로 이어지는 산책로이기도 하면서 트래킹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당리의 마을 이야기에는 결국 서로를 도와주면서 살아가는 농업 생활권의 문화와 연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