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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22. 2021

차별을 향해

차별하기를 원하며안 그런 척...

미국에서 일어나는 아시안인들에 대한 증오범죄가 확산되어가고 있다. 한국의 방송에서도 거의 매일 비중 있게 보도할 정도로 이슈가 되어가고 있다. 증오와 차별은 다르다. 그렇지만 차별이 당연시되고 인권이 경시되다 보다 보면 증오의 불씨가 지펴진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차별은 당연시되고 있다. 특히 돈에 대한 차별은 마치 승자독식이 당연한 것처럼 여긴다. 


돈에 대한 왜곡된 관념은 비트코인에서 드러난다. 지금 비트코인이 한참 핫한 감자처럼 보이지만 이미 필자는 7~8년 전쯤에 비트코인을 알고 있었고 화폐로서의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화폐로서의 가치는 모두 사라진채 디지털 자산으로서의 기능은 하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가치가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투자 광풍이 있었던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그때는 그것이 분명히 가치가 있는 것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치가 사라졌다. 


주식, 부동산, 비트코인 등은 이 사회가 돈에 대해 얼마나 차별적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경제지는 통계를 왜곡해서 마치 진실인 것처럼 쓰고 외국 신문을 조금만 살펴봐도 알 사실을 왜곡해 클릭을 유도하는 신문들이 즐비하다. 공동체의 삶을 생각한다는 노동조합조차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차별하는 것을 당연시 여긴다. 대기업 노조에서는 하청업체가 자신들의 급여와 비슷해지기보다는 차라리 자신들의 월급이 내려갈망정 하청업체의 급여가 더 내려가기를 원한다. 


차별적 정의 혹은 선택적 정의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바뀌기는 힘들 듯하다. 이미 차별의 씨는 오래전부터 뿌려졌다. 쑥쑥 자라서 지금은 나무처럼 굵어졌다. 돈이 이제 생산적인 주체로 흘러가기보다 금융으로 흘러가는 더 많아질 것이다. 주식과 부동산이 괜히 올라간 것이 아니다. 돈은 풀렸는데 생산적인 활동에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낮아졌으니 당연한 결과다. 


완전히 노동집약적 산업은 자동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기계를 사는 것보다 저임금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 될 테니 말이다. 필리핀의 건설현장에서 단돈 5,000원이면 하루 종일 콘크리트 바닥을 파는데 한 사람을 고용할 수 있다. 기계 한대면 할 수 있는 일을 여러 명을 고용한다. 고임금의 노동자가 일하는 현장은 고도화되고 기계화된다. 한 사람이 생산할 수 있는 생산량이 중소기업과 점점 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인식 변화를 통해 사회를 바꾸기보다 그 현실을 약자를 통해 풀려고 한다는 것이다. 약자가 더 힘없는 약자를 통해 자신이 강자에 있다는 것을 만족하려고 하다. 특정 기업의 뉴스 채널을 보면 어떤 의도로 그런 방송을 하는지 한눈에 보인다. 교묘하게 차별을 받아들이라고 말하면서 그 분노를 선택적 대상에게 풀기 위해 몰고 간다. 


사회가 건강하다는 것은 취업을 위한 다양한 교육을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을 때다. 취업할 곳이 점점 줄어드니 자연스럽게 자극적인 방송만 넘쳐난다. 지금 뉴스에서 주식, 부동산, 비트코인 등을 제외하고 보면 할 말이 별로 없을 것이다. 부산에서 일어난 슈퍼카의 갑질은 빙산의 일각이다. 지난 산업혁명의 결과로 사회는 엄청난 발전을 이루어냈다. 이제 그런 혁명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 가지 기대하고 있는 것은 전기자동차와 그에 기반한 플랫폼이 활성화되면 지금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차별보다는 공존을 차이보다 공감을 원하지 않는 이상 자극적인 뉴스들은 계속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만들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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