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향교의 봄은 따스하고 포근했다.
지나고 보니 생각한 대로 걸어갈 수 있는 데에는 신과 의라는 것이 있었다. 스스로 마음 자세와 말을 일치하는 것이 '신'이며 스스로 나아가야만 하는 길을 나아가면 저절로 해야만 하는 일이 밝혀지는 것이 '의'다. '신'이 그대로 '의'가 되는 사람의 말은 반드시 실현된다. 물론 그 시간까지 도달하는 과정에는 많은 노력과 생각과 실천이 필요하다. 안정될만하면 벗어나야 하고 편안할만하면 뒤 흔들어야 될 때가 있다.
하동을 처음 찾았을 때는 어릴 때라 평사리공원과 같은 곳을 찾았지만 마음먹고 찾았을 때는 하동향교를 먼저 찾아가 보았다. 하동향교의 첫인상은 평온함이며 그 속에 숨은 묵직함이었다.
하동 향교의 건물 배치는 교육 공간을 앞쪽에, 제례 공간을 뒤쪽에 두는 향교 건물 배치의 일반적 형태인 전학후묘(前學後廟) 양식을 따르고 있는데 1415년(태종15)에 고전면 고하리에 건립되었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60년(현종 원년)에 횡천면에 복원하였다가, 1736년(영조 12)에 다시 지금의 위치로 옮겨왔다.
입구에서 본 것처럼 최근 하동향교에서는 춘기석전대제를 거행했다. 공자·증자·안자·맹자·자사 등 5성(聖)과 주자·정자 등 송조 2현(賢), 최치원·정몽주 등 동국 18현(賢)의 학덕을 기리고 인의를 추모하는 것으로 석전대제는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전통 유교의식으로, 매년 봄(음력 2월 초정일)·가을(음력 8월 초정일) 두 번에 걸쳐 거행되며 유교 선현들의 가르침을 기린다.
하동향교의 뒤편으로 다양한 수목이 식재되어 있는데 각기 다른 색깔을 보여주고 있다.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시간에 하동향교를 찾은 터라 돌아보기에 딱 좋은 시간이었다.
어진 사람은 자신이 자립하는 것과 동시에 지인을 자립하게 하고, 자신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지인이 목적을 달성하는 것과 불가분이라고 하는 인간관계의 법칙을 확실히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배움은 깨달음이 있어야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다고 한다. 누군가가 풀어놓은 과정을 뒤따라할 뿐 왜 그렇게 되는지 모르는 것은 근본을 알기 힘들다.
하동향교의 서재에 올라가서 잠시 대청마루에 앉아보았다. 필자는 옛날 가르침을 좋아하고 분주하며 의미를 탐구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사람이 어떻든 있는 척 혹은 아닌 척 꾸미기만 하면서 언제나 자신을 잃지 않기는 어려운 일이다.
하동향교의 정문인 풍화루는 전명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의 팔작지붕 건물로 아래층은 출입구의 역할을 하며, 2층은 유생들의 여가 및 여름철 학습공간이자 손님을 접대하는 곳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위쪽에 올라와서 보니 하동읍이 내려다보인다. 상시 말과 행동을 일치하는 것은 쉬워 보이지만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 과정이 반복되면 가고 싶은 길이나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하동향교의 춘기석전대제에 모셔졌던 최치원의 길이 그러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