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깨닫다.

순창 대모암과 순창단오성황제

태어나면서 모든 사람은 진리로 나아간다는 여래를 자신 안에 품고 있기 때문에 깨달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불교에서 여래의 가장 널리 채택되는 해석은 '그렇게(tathā 如) 간(gata 去) 이'라는 해석과 '그렇게(tathā 如) 도달한(āgata 來) 이'라는 해석이다. 석가모니가 과거 또는 미래에 깨달음을 체험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가르치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MG0A4799_resize.JPG

순창에 대모암이라는 사찰은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70호인 홀어머니 산성의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이 산성은 대모산의 동쪽과 서쪽 두 봉우리를 감싸듯 쌓은 산성으로 과거에 군대 창고 등으로 사용되다가 조선 후기에 폐쇄되었다고 한다.

MG0A4804_resize.JPG

대모산으로 올라와보니 대모암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백제시대 산성터인 홀어머니 산성(대모산성) 인근에 위치해 있는 대모암은 1933년 학성스님이 창건한 제24교구본사 선운사 말사다. 자타불이전, 풍광전(風光展, 삼성각)과 요사채 등을 새로 건립한 사찰이다.

MG0A4806_resize.JPG

바위 위에 서 잇는 불상이 인자해 보이는 모습으로 홑 어머니라는 이름과 어울려 보인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건지 몰라도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MG0A4807_resize.JPG

대모암 목조 여래좌상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48호로 지정이 되었는데 목조 여래좌상은 17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여래상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여래는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뜻의 부처의 덕성을 표현하는 열 가지 이름 중에 하나라고 한다.

MG0A4810_resize.JPG

대모암이라는 암자의 이름을 붙였지만 대웅전이 있는 사찰로 대모암은 1988년 전라북도 전통사찰 제62호로 지정이 되었다.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를 비롯하여 독성, 지장, 칠성탱, 산중탱이 걸려 있다.

MG0A4811_resize.JPG

순창은 고려 때부터 성황사(城隍祠)가 있었는데, 성황사는 고려 충렬왕 때의 문신 설공검(薛公儉, 1224~1302)을 성황대신(城隍大神)으로, 홀어머니 산성 양씨 부인을 수호신으로 제사를 올렸던 곳이라고 한다. 코로나19에 국가민속문화재 제238호 성황대신사적현판(城隍大神事跡懸板)을 볼 수 없었는데 방문했을 때 안내를 통해 만나볼 수 있었다.

MG0A4817_resize.JPG

이 현판은 대모암 경내 성황사에 있다가 일제 탄압으로 1940년경 성황사가 훼철되면서 사라졌다가 1992년 순창 설 씨 집성촌 조사과정에서 발견된 것이다. 내용은 현판에서 확인되는데, 순창에서 단옷날마다 성황대신 설공검과 수호신 양씨 부인에게 제사를 올렸고, 조선시대인 1743년 성황사를 크게 중수했다고 한다.

MG0A4819_resize.JPG

죽은 사람의 혼령은 그의 판결에 따라 신에게 자신의 선행과 악행을 보고해야 한다고 알려졌기 때문에 믿음이 깊은 사람들은 성황묘(城隍廟)에 제사를 지냈다. 한국의 서낭은 본래의 마을 수호신 신격이 여타의 신격과 결합되어 복합적 신앙대상으로 변화된 신격이라 할 수 있는데 순창의 성황제는 그런 오래된 가치를 가지고 있다.

MG0A4820_resize.JPG

대모산과 같은 산은 언제나 인류에게 중요한 존재였다. 산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이며 현자들은 명상을 위해 산속 동굴을 은신처로 삼아왔다. 산 자세는 적당한 휴식과 숨을 고르고 몸을 정렬하도록 돕는데 다른 모든 자세의 근본이기도 하다. 대모암의 뒤로 조성된 등산로는 등산로가 잘 조성되어 있는데 나무들이 많고 길은 평평하다. 가볍게 산책하기 좋은 길이다 전북 순창군이 백제시대에 축조된 홀어머니산성(대모산)에 대해 전북도 기념물과 국가사적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녹차 한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