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문화

고흥 류 씨 정려, 어사 홍원모 영세불망비, 은진 송 씨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명의 기운을 잃어버림과 동시에 그 사람을 기억하는 것은 보통 후손이나 지인, 친인척에 국한이 된다. 사람이 잊히게 된다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아련한 느낌이다. 멕시코에서는 죽은 가족과 친구들은 이승에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어야만 죽은 자의 날에 마리골드 꽃길을 건널 수 있다 이는 영화 코코에서 그려진 바 있다. 대전의 구석구석을 다니다 보면 문화재 보호를 위해 내용은 간접적으로 접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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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립박물관에서 대전의 곳곳에 자리한 문화재의 기록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방문을 해보았다. 날은 참 좋은데 알려줄 방법이 많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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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역사가 된 문화재는 회덕현이 있던 대덕구에 가장 많이 남아 있다. 은진 송 씨는 중리동, 송촌동, 이사동, 판암동, 경주 김 씨 역시 회덕, 진잠, 탄동, 연안이 씨는 갑동, 회덕동에 거주했는데 집성촌을 이룬 곳이 대덕구에는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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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문화재는 보호되고 있어서 글을 가까이서 보는 것이 쉽지가 않다. 이번 전시전에서는 대덕구에 자리한 문화재의 탁본 등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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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대덕구 중리동 낮은 야산에 남향으로 세워진 류 씨 부인(1371∼1452)의 정려각은 1996년 3월 27일 대전광역시의 유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번에 그 탁본을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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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류 씨는 시부모를 극진히 모시고 아들을 잘 보살펴 훌륭히 키워 낸 부인은 조선 효종 4년(1653)에 열녀로서 정려각이 세워졌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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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대전의 지정문화재인 어사 홍원모 영세불망비도 이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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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사 홍콩이 기축년 10월에 이 고을(회덕)에 도착하여 자세히 고을의 병을 살피고 깊이 백성의 숨은 아픔을 채취하니 조사가 명분에 바르지 아님이 없었다는 내용과 함께 비를 세우면서 무궁하고 드리움이 영구할 따름을 기록하고 있다. 폐단을 방지하고 병을 제거한 홍어사를 영원토록 잊지 않는 회덕 갑천의 백성이라는 애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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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해외여행도 그렇게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지만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중국이나 일본으로 사행을 떠나는 것은 그야말로 험난한 여정이었다. 사행길에 오른 사신들 자신도 서로 시를 지어 주고받으며 기나긴 여정 동안의 감회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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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는 은진 송 씨의 후손들의 흔적이 가장 많다. 논어를 비롯하여 다양한 옛날의 서적들을 해석하고 사상을 펼쳤던 사람들의 흔적이 있는데 동춘당 송준길의 문집인 동춘당 선생 문집이 눈에 뜨인다. 1768년경에 목판본으로 간행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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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의 사람들은 글로 기록문화의 흔적을 남겼는데 특히 선비 음악은 인을 추구하는 군자가 인의 극치인 성인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예악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자연의 멋과 예술을 즐기는 풍류 활동을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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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보지 않고도 기록문화에 의해 그 나라의 문화를 가장 잘 이해한 책중에 미국의 인류학자인 베네딕트(Benedict, R.)가 쓴 국화와 칼이 있다. 필자도 그 책을 읽어보았지만 그녀가 문헌만을 가지고 보고서를 집필한 것을 넘어서 일본에 직접가 보지 않고도 일본 문화의 핵심을 잘 이해한 잘 쓴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록문화는 그렇게 사람은 사라졌지만 그 정신의 사라지지 않음을 만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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