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Apr 14. 2021

나아가는 것의 고민

아도화상이 창건하였다는 당진 영랑사

구미에 가서 아도화상이 처음으로 전파하였다는 불교 초전지도 보고 도리사를 찾아보았던 기억이 있다. 본래의 도리사는 폐사되었으며 후대에 도리사의 부속 암자였던 금당암을 중심으로 하여 중창한 절이 현재의 도리사라고 부르고 있다. 그 사람이 이곳 당진까지 와서 창건하였다는 사찰이 영랑사인데 통일신라시대 후기 도선 국사가 중창하였다는 정설도 있으나 역사적으로 명확하지 않다고 한다. 

영랑사는 현재 수덕사(修德寺)의 말사로 564년(위덕왕 11) 창건하였고, 신라 말에는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중창하였으며, 1091년(선종 8) 대각국사(大覺國師)가 중건하였으며, 1678년(숙종 4) 7월에는 호암선사(護巖禪師)가 중수하였다.


영랑사는 대사찰의 규모를 간직한 곳은 아니다. 고려 선종 8년 (1091)에 대각국사 의천이 크게 수리하였으며 조선 숙종과 순조 당시 영랑사를 보수하였으며 정면으로 보이는 대웅전은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중수하였다. 지붕을 받이는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 건물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이 공간에는 어울리는 느낌이 드는 곳이기도 하다. 

사찰에서 사경은 첫째, 불경을 후손에게 전하기 위하여, 둘째 승려가 독송하고 연구하기 위하여, 셋째 서사의 공덕을 위한 목적에서 제작되었다. 사경은 국가의 어려움을 불력으로 구원한다는 뜻에서 많이 만들어지기도 했었다.

오래된 물건들과 새롭게 만들어진 물건들이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삶을 살아가든 태어난 이상 누구나 겪어야만 하는 괴로움이 있기 마련일 수밖에 없다. 그 괴로움을 경전에서는 다섯이 많이 쌓이는 것(五盛陰)을 의미하고 있다. 

우연하게 찾아간 곳인데 영랑사에서 일하시는 분인지 멀리서 보이기에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중앙아시아를 거쳐서 중국으로 건너간 불교는 오는 길에 초원길(Greenroad)과 비단길(Silkroad)을 거쳤는데 아도화상과 같은 사람이 이곳 당진까지 와서 흔적을 남겼다는 이야기가 있다. 

불교는 바닷길을 통해 혹은 육로를 통해 전해지기도 했었다. 당진은 중국과 가까운 지리적인 이점이 있어서 바다를 통해서 접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구미에 신라불교 초전지를 만든 아도화상이 이곳에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영랑사 둘레길도 조성이 되어 있는데 가볍게 돌아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아도화상은 毗處王(비처왕)(炤知王(소지왕)) 때 阿度和尙(아도화상)이 侍者(시자) 3人(인)과 함께 역시 毛禮(모례)의 집에 와서 墨胡子(묵호자)처럼 수년을 살다가 병 없이 죽었다고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매실의 고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