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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pr 25. 2021

한글

익산의 가람 이병기 생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글로 대화하고 보고서를 쓰고 SNS에 자신의 현상황을 보여주고 댓글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도 한다. 한국사회가 소통하게 하고 경제가 돌아가게 하는데 중요한 것이 바로 언어다. 우리는 어떤 것과 바꿀 수 없는 한글의 가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민하고 살아가지는 않는다. 글은 누구나 접할 수 있지만 누구나 잘 사용하지는 않는다. 

익산에 생가가 남아 있는 가람 이병기 선생은 한글을 사랑했던 사람이다. 시조의 신조(新祖)라고도 불리는 이병기 선생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소재를 구하고 한글을 사용하여 주제의식을 형상화한 시조를 썼던 사람이다. 그의 시조는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자의식을 일깨우는 구실도 했다고 한다. 

가람 이병기 선생의 생가로 걸어가 본다.  전북 익산군 여산면 원수리에서 아버지 연안 이 씨와 어머니 파평 윤 씨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난 이병기 선생은 일찍이 시조 연구와 창작 및 고문헌 수집에 관심을 가졌다. 

이병기 생가는 초가집이지만 글을 쓰기에 좋은 환경이다. 적당한 규모의 가옥에 앞에 연못이 있고 계절의 변화와 함께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환경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어릴 적 환경도 중요한데 이병기 선생의 가정환경은 그가 글을 쓰기에 무난했다. 

옥천의 대표시인인 정지용은 이병기가 가람 시조집(嘉藍時調集)을 낼 때 그를 극찬했다. 시조에 있어서 그의 오른편에 앉을 이가 없으며 가람의 걸음은 바야흐로 밀림(密林)을 헤쳐 나온 코끼리의 보법(步法)에 비견했으며 송강(松江) 이후에 가람이 솟아올랐다고 말했을 정도로 그를 표현했다. 

형태는 초가집이지만 양반가옥에 못지않은 완성도가 있는 가옥이다. 입구의 사랑채는 수우재라고 불렀는데 지조 있는 선비로 사신 선생의 풍취가 은은하게 느껴지는 공간이다. 이름은 현명함을 감춘 채 어리석은척하면서 살아간다는 의미로 이병기 선생이 지었다고 한다.  

고풍의 한식 초가로 안채, 사랑채, 헛간, 고방채, 정자 등이 남아 있으며 생가 옆으로 수령이 200년쯤 된다는 탱자나무가 있다. 그 오른쪽 아래로 선생의 기념비, 동상, 박사묘가 자리하고 있다. 

그는 1910년 전주공립보통학교를 거쳐, 1913년 관립한성사범학교를 졸업했으며 공립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시조를 창작했는데 이후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투옥되기도 했었다. 

문학관 앞에는 그가 조형물로 만들어져 있는데 무엇이 적혀 있나 살펴보았다. 학문은 오랜 전통을 이어왔으며 마치 샘물이 냇물, 냇물이 강물, 강물이 바다를 이룸과 같다. 크면 클수록 이러하다는 내용과 함께 더 바르게 크게 새롭게 나아감을 권하고 있었다. 다시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돌아본다. 

이병기 문학관으로 들어가 본다. 그의 시조와 함께 그의 삶을 일부 엿볼 수 있다. 한글을 정말로 사랑했던 사람이며 민족과 함께 미래를 꿈꾸었다. 시조라는 것이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실생활과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다. 


어두운 깊은 밤을 나는 홀로 앉았노니

별은 새초롬히 처마 끝에 내려보고

애연한 서향(瑞香)의 향은 흐를 대로 흐른다


밤은 고요하고 천지(天地)도 한맘이다

스미는 서향(瑞香)의 향에 몸은 더욱 곤하도다

어드런 술을 마시어 이대도록 취하리


이병기 - 서향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들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만나는 스승은 바로 부모다. 부모의 생각과 가치관은 자식이 성장하는 데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눈에 띄는 것은 ‘가람일기’. 19세인 1909년부터 쓰기 시작해서 1966년 6월까지 쉬지 않고 기록한 그의 일기장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글 혹은 문장은 언어의 기록이다. 좋은 문장은 많이 읽고(多讀), 많이 쓰고(多作), 많이 생각하기(多商量)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다. 세 가지 중 어느 하나가 빠져도 좋은 문장은 나오기가 어렵다. 교육을 통해 후세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던 이병기 선생은 긍정적인 변화를 꿈꾸었던 사람이다. 

글은 다양한 방식으로 효현이 될 수 있다. 글은 쓰면 쓸수록 어려우며 언어를 귀하게 다룬다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하게 한다. 언어는 보이지 않은 곳에서 베를 짜는 것과 같다. 사물이 없는 글을 짓지 않아야 하며 없는 데 있는 것처럼 하지 말아야 하며 모방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것은 쉽지가 않다. 

우리 방으로는 창(窓)으로 눈을 삼았다

종이 한 장으로 우주(宇宙)를 가렸지만

영원히 태양과 함께 밝을 대로 밝는다


너의 앞에서는 술 먹기도 두렵다

너의 앞에서는 참선(參禪)키도 어렵다

진귀한 고서(古書)를 펴어 서권기(書券氣)나 기를까


나의 추(醜)와 미(美)도 네가 가장 잘 알리라

나의 고(苦)와 낙(樂)도 네가 가장 잘 알리라

그러나 나의 임종(臨終)도 네 앞에서 하려 한다


이병기 - 창


이날은 이병기 선생이 보았던 창으로 한글을 보았으며 읽는 시가 무엇인지 곱씹으면서 그의 생가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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