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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pr 25. 2021

인생의 도(道)

이유태 유허지에 자리한용문서원

많은 것을 가졌다고 해서 물질적인 것에서 만족을 느끼게 되는 것이 반복이 되면 그건 중독이 된다. 중독은 아무리 채워도 다른 것을 찾기 때문에 채워지지가 않는다. 이미 사람의 몸에는 채워져 있지만 스스로와 소통을 하지 못하면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천하의 근본은 나라에 있고 나라의 근본은 집에 있고 집의 근본은 한 사람의 몸에 있다는 옛말은 틀린 것이 하나도 없다. 사람의 몸은 하나의 별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동의보감을 읽어보면 사람 몸 하나는 하나의 우주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주는 백제의 수도였으며 한대의 오경박사제도를 도입하는등 역사 문화 도시이면서 교육도시로서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으로 이곳 용문서원을 비롯하여 충현서원, 명탄서원등이 공주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용문서원은 사우 6칸, 신문 1칸, 좌우 협문 각 1칸, 장서각 6 칸, 동재 6칸, 유물 전시관 8칸, 강당 8칸, 고사1칸, 대문 3칸 등을 갖추고 있다. 용문서원 ( 龍門書院 )의 모체는 초기에는 1663년(현종4)에 용문서재라는 이름으로 건축되었다. 

오래간만에 용문서원을 찾아서 가보았다.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 곳으로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인기척이 느껴지지가 않았다. 이유태선생은 유배 이후 중동골에서 거주하면서 용문서재, 사송서재, 중동정사등을 세워 후학을 가르치고 독서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자신과 소통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제대로 없다. 용문서원의 이유태 선생은 김집의 천거로 인조 때 공조 이조참의와 승지를 지냈지만 현종대에 와서는 사헌부 대사헌을 비롯하여 22번이나 벼슬을 내렸지만 거부하였다

날이 너무나 따뜻해서 바깥으로 나들이하기에 너무 좋다. 최근의 부동산 문제를 되짚어보면 이유태 선생이 살았던 당시에 토지에 유리되었던 농민들이 연상된다.  이유태 선생은 민심이 흔들리고 국정 동요의 원인을 '농민의 유리와 토지의 황폐'로 진단하였다고 한다.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사이의 돌계단을 밟고 사당으로 올라가 본다. 이유태 선생은 57세가 되던 1663년에 이곳 중동골로 온 다음 용문서원을 건립하여 후학들을 길렀다. 

초려 이유태 선생의 제향은 용문서원의 명덕사에서 봉행을 한다. 용문서원을 중심으로 왼쪽에 고택이 있고, 오른쪽에는 용문서원의 전통을 잇기 위하여 부설로 세운 공주전통문화교육원이 있다.


용문서원에 걸려 있는 화이불류(和而不流)라는 의미는 더불어 산다는 뜻이다. 자신이 흔들리고 쉽게 화를 내고 공격적인 것은 그만큼 자신이 강해지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화합하되 휩쓸리지 않고, 가운데 바로 서서 기울어지지 않는 게 강한 것이라는 공자의 말을 다시 곱씹어본다. 

사람들이 북적이고 왁자지껄한 술집은 그 순간 시간이 흘러가고 있음을 잠시 잊게 하지만 지나고 나면 허함만이 남아 있다. 굳이 채울 필요 없고 흔들릴 것도 없이 무언가를 꼭 잡아야 할 필요도 없다. 용문서원의 이유태 선생은 한미한 출신으로 민재문에게 배우다가 김장생.김집 부자를 사사하였으며 그 문하의 쟁쟁한 후학들과 함께 호서산림 오현의 한 사람으로 자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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