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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pr 26. 2021

청보리밭

다시 찾아온시간 속에청색 풍광

청(靑)이라고 하면 푸르다 혹은 에너지가 넘침을 의미한다. 그 시기를 겪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청춘 혹은 청년이라는 기준이 무엇인가를 고민할 때가 있다. 다시는 오지 않을 젊음이란 무엇인가란 고민을 하며 다른 것에 의지하며 아직 나이가 덜 먹었음을 보여주려고 한다. 먹고살기에 바쁜 시대는 이제 지나가버렸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던 시기는 이미 저 건너편으로 가버렸다. 

이맘때쯤 무릎까지 키 자란 청보리는 이달 말이면 허리까지 자라 5월 초까지 절정의 초록빛 장관을 선사해준다. 5월 말엔 누렇게 익은 보리를 수확하게 되니 청보리를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남은 셈이다. 도시 속에서도 자연의 생태가 잘 살아 있는 공간들이 있다. 대전 대덕구의 장동이 그런 곳이기도 하다. 반딧불이는 무주에서 많이 서식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곳에도 반딧불이 서식지가 있었다. 

민물가재를 잡으면서 그것만으로도 재미있었던 그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즐길 것이 너무나 많은 요즘 자연보다 자극적인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붉은 돌(丹) 틈에서 피어나는 새싹(生)은 더욱 푸르러 보인다는 뜻을 가진 푸를 청이 어울리는 시기는 5월 중반까지 정도다. 

장동의 이 길에는 생태가 잘 살아 있고 보존하고 있다는 의미로 곤충과 생명체들의 조형물들이 만들어져 있다. 식이섬유소가 쌀에 비해 약 다섯 배나 높아 지금은 다이어트에 좋은 건강 식재료로 인기가 높은 청보리는 서민들에게 중요한 식량 공급원이기도 했다. 

자연의 모든 식물에 새싹이 자라고 꽃이 피는가 싶더니 열매를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역시 봄에는 걷는 재미가 있다. 그렇게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걷기에 딱 좋은 날들이다. 

데크길을 걷다가 보는 자연 속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토박이로 살았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가끔은 듣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지만 코로나 19에 요즘은 그렇게 접근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마을의 입구에 피어 있는 흰 철쭉을 본다. 꽃 한 송이가 갖는 개성과 매력보다 수많은 꽃들이 한데 어울려 뿜어내는 매력이 철쭉에 있다. 곡선의 미와 어울려 마을을 차분하게 보여주는 흰 철쭉은 장관은 아니지만 봄의 이야기를 전달해준다.

청보리는 곡실을 포함하는 사료맥류로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대부분 벼와 보리의 2모작 작부체계로 재배되기도 한다. 청보리가 딱 어울리는 시기가 요즘이다. 5월 중순만 넘어가도 이런 풍광을 보기가 어렵다. 

청보리가 가득 찬 너른 들판과 나지막한 산자락으로 하늘이 유난히 파랗게 보인다. 보리밭 어딘가에는 다양한 생물도 살고 있을 텐데 그냥 겉에서 보면 이렇게 보일 뿐이다. 산업구조가 바뀌어가고 있지만 청 보리 익어가는 계절에는 논에 물을 대기 시작할 때 막걸리가 솔깃하게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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