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속삭이고 길이미소 짓는이야기
그해 여름 사랑이 우습고 삶이 시시해 보이던 영화 속 주인공이 걷던 공간이 대전에 있다. 오정동 선교사촌은 이병헌과 수애가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그 해 여름의 한 장면을 촬영했던 곳이다. 아름다운 사랑의 추억이 머물렀던 그곳의 여름은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오정동 선교사촌에서는 그 해 여름뿐만이 아니라 조선시대의 마지막 옹주인 덕혜옹주와 살인자의 기억법과 마더를 촬영하였다. 그 무엇보다 오정동 선교사촌에서 연상되는 것은 그 해 여름이라는 영화다.
대전에서 사람들이 모여 살던 마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은 많지가 않다. 선교사촌은 한남대 설립 초기에 지어진 남장로교 선교사들의 사택 7채가 모여 형성된 작은 마을이기도 하다. 현재는 문화재자료 제44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 곳이다.
때 묻지 않은 풍경과 순수한 사랑을 연상하는 것은 설렘 때문이 아닐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사랑을 기다리거나 사랑을 추억하면서 살아간다. '윤석영' 교수(이병헌 分)의 첫사랑 '서정인'(수애 分)을 찾아 나선 TV 교양 프로그램의 덜렁이 작가 수진(이세은 分)은 취재 길을 나서며 당신을 떠올리는 추억을 만나게 된다.
적벽돌로 되어 있는 이곳은 사람이 살았던 곳이지만 공간의 곳곳에는 그 당시의 태양 같은 열정은 남아 있었다. 신록이 넘치는 계절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그 해 여름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하루 종일 그냥 무의미하게 보내는 것을 참기가 힘들어서 잠깐 밖으로 나들이를 하였다. 고목나무로 우거진 살아 숨 쉬는 연정 속에 춘화(春花)가 온 세상에 만발하니, 춘향(春香)이 코끝을 자극하는 계절이다. 선교사촌의 길은 선교사들이 직접 손으로 가꾸었고, 많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았던 길이라 신선한 맛이 있다.
때론 길을 잃을 때가 있다. 정답도 없고 해답을 명쾌하게 말해주는 사람도 없다. 선교사촌의 길을 걷다가 문득 길가에 피어 있는 꽃도 보고 쨍한 태양도 바라본다.
이곳에서 꽃을 보는 것처럼 한 폭의 동양화처럼 단아한 외모와 순수한 내면을 가진 여자 서정인이 있었다. 그녀는 그의 눈빛에 담긴 진심에 자신의 남은 전부를 걸었다
그리움이라던가 설레임, 사랑같은 것은 누구나 마음 한켠에 담고 있는 씨줄로 공간을 삼고 날줄로 감성을 담아내어준다.
누구에게나 찬란했던 그 해 여름이 있지 않았을까. 올해 여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1950년대 국내 시대상이 반영된 건물들로 붉은 벽돌에 한식 지붕을 올린 점이나 주진입이 현관으로 모이는 점 등에서 서양식 건축에 한국 건축양식이 있던 곳으로 이곳을 배경지로 촬영했던 남자 주인공 윤석영처럼 일생의 그리움을 앓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