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Sep 19. 2022

합덕의 야경

합덕성당을 온전하게 만나는 시간, 밤

무언가를 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림을 그릴 때 어두운 곳은 그대로 표현하고 강조하고 싶은 부분만 밝게 처리하는 회화기법이 있다. 렘브란트가 잘 사용했던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기법은 중심과 강조점만 밝게 처리하여 드라마틱한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야경은 바로 그런 효과가 있다. 밝을 때는 모든 것이 잘 보이지만 어두울 때는 빛으로 강조할 수 있는 부분만 강조할 수 있다. 

이제 여름은 지나갔지만 여름의 합덕제는 푸른 하늘에 드넓게 펼쳐진 연꽃단지의 조화가 절경을 연출하며, 합덕성당은 그 모습이 이국적이고 아름다워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이 인증 사진을 찍는 곳이기도 하다. 

오는 30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당진 합덕제 일원에서 수리 농경 역사를 주제로 한 첫 번째 문화재 야행을 개최가 될 예정이다. 야행은 야경(夜景), 야로(夜路), 야사(夜史), 야화(夜畵), 야설(夜說), 야식(夜食), 야시(夜市) 등 총 7야로 구성해 당진의 문화유산과 생태자연경관을 다양한 체험형 행사로 만나볼 수 있다. 

축제기간에 맞춰 합덕성당, 합덕 수리민속박물관 등 주변 문화시설도 본 행사에 맞춰 개방시간을 대폭 늘리고 각양각색 조명과 함께 색다른 경험을 받을 수 있게 할 예정이라고 한다. 

필자는 항상 한 발자국을 먼저 가서 그 느낌을 받고 온다. 당진은 전국 최고의 쌀 생산지로서 추수의 계절인 가을에 문화재 야행을 통한 수리 농경문화가 남아 있는 곳인데 이 공원의 곳곳에는 그 콘셉트가 묻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수레와 농경의 최신 문물 수용을 강조했듯이 본 행사에서는 당나귀 수레 마차와 농경에서 필수 이동수단인 소달구지 마차를 활용한 합덕제 투어 프로그램을 만나볼 수 있을 듯하다. 

항상 분기점에서는 혁명 같은 기술이 나오기도 하지만 기술이 저변에 자리 잡게 되는 것은 모든 것이 무르익었을 때다. 농업기술 역시 다양하게 진화를 해왔다. 지금은 그냥 평범해 보이는 기술이지만 당시에는 아주 오랜 시간을 거쳐서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다. 

때론 그렇게 조명을 받을 필요가 있다. 하나에 집중하는 것처럼 포커스가 맞추어지는 것이 인생에서도 필요할 때가 있다. 합덕성당과 합덕제가 자리한 곳에서 돌아본 이 시간은 야경의 가치를 새롭게 볼 수 있었다. 화려한 불빛으로 만들어지는 풍경의 대비는 때론 검은 장막을 걷어내면 조금씩 드러나는 마법 같은 풍경도 보인다. 때로는 막막한 현실 속에 숨겨진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듯한 놀라움과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오정동 선교사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