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행동에 책임질 때 힘은 믿음이 있다.
사람의 성향마다 다르겠지만 자신의 행동과 말 하나하나에 생각을 하고 살아가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이 있는 반면 일부는 책임을 지는 사람이 있다. 성향에 따라 사람을 바라보는 기대치가 달라지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믿음에 대한 배신은 훨씬 더 큰 파장으로 돌아오게 된다. 애초부터 그런 믿음에 대한 선입견 자체를 만들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그런 문제들이다. 남들과 다른 기준으로 지켜왔다고 했을 때 가지는 그런 힘들은 확고한 신뢰를 만들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신뢰를 깨는 의외의 행동이 보일 때의 반감 역시 상당하다. 엑스맨 속의 에릭 렌서 혹은 매그니토는 누가 보아도 원칙론자에 가깝다. 예고편의 편집기술만으로 볼 때는 지금까지 나온 영화 중에서 모든 장점을 다 가지고 있는 착각을 가지게 만든 이 영화는 찰스 자비에와 에릭 랜셔가 각각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라는 이름을 얻기 전 1960년대 ‘냉전 시대’를 그리고 있는 영화가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다.
영화 속에서 프로페서 X와 강력한 카리스마의 매그니토가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알지 못하고 돌연변이 노땅으로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의 연기는 오히려 노련한 이들의 연기를 뛰어넘어 그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원래 엑스맨 시리즈에서 이들이 노련함만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들은 노련함에 열정을 더한 느낌이다. 미스틱이 어떻게 자신의 색깔을 찾아가는지 의지와 상관없이 비스트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찰스 사비에보다 더 큰 능력을 가졌던 엠마 프로스트를 보는 재미는 완전히 보너스를 받는 느낌이 든다.
인류를 지배하려는 집단 ‘헬파이어 클럽’의 수장 세바스찬 쇼우는 미국과 러시아 간의 핵전쟁을 도발해서 3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려 하는데 친해질 것 같지 않은 찰스와 에릭이 세계 각지를 돌며 때론 ‘다르다’는 이유로, 혹은 안전하지 못하다고 차별받는 이들을 규합한다. 엑스맨 시리즈를 보려면 돌연변이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더 몰입감을 가져다준다. 돌연변이와 인간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고 믿는 찰스와 달리, 에릭은 전쟁 중에 일어난 비극적인 과거사로 인간에 대해서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다. 찰스는 인간이 자신들과 조금 다른 사람이라고 하고 에릭은 인간들이 자신들과 틀린 존재라고 한다. 찰스는 유전자 변화에 의한 진화론을 깊게 이해하지만 에릭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진화한 인간형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세바스찬 쇼우가 생각하는 그리고 매그니토가 이어받았던 자연도태는 오래전에 만들어진 개념이다. 1798년 맬서스는 인구에 대한 법칙을 논문으로 발표하면서 세계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대한 사회 보조나 지원은 중단되는 것이 맞으면 이는 결국 인간도 동물의 개념으로 볼 때 인구를 줄여주는 자연적이 수단이 된다고 하였다. 산업화 초기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지녔던 맬서스의 이론은 오늘도 유효한 듯하다. 에릭 렌서는 과연 악역일까. 매그니토 이전에 에릭이었던 이 캐릭터는 정말 매력적이면서 강인함 그 자체이다. 찰스 사비에게 팀을 조화롭게 이끄는 정신적인 리더라면 매그니토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기반으로 자신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이끈다. 다른 리더의 스타일이지만 매그니토 역시 강력한 리더의 자리에 올라설만한 돌연변이이다. 특히 후반부에 인간들과의 반목으로 자신이 설자리를 확실하게 잡는 모습은 매그니토가 가질 수 있는 카리스마 그 자체로 그가 가진 능력도 능력이지만 반대쪽에 서야 하는 정당한 이유를 몸소 보여준다.
엑스맨은 만화로도 이미 유명해진 작품이다. 특히나 수많은 마니아층이 있는 엑스맨의 수많은 캐릭터들은 호감을 사기에 충분하다. 모든 것의 연결성에서 캐릭터의 완성도면에서 그리고 비주얼적인 면까지 골고루 갖추고 있던 영화였다. 스토리에서도 나무랄 곳이 없었던 엑스맨을 보면 우리들의 삶은 그냥 뚝딱 만들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 프로페서 X가 되기 전 그의 이름을 찰스였으며 매그니토가 되기 전 그의 이름은 에릭 렌서였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은 자신이 걸어온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그의 모습은 순수함이 상대에 대한 어떤 모습으로 바뀌게 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모습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