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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pr 11. 2016

널 기다리며

널 기다린다는 말은 참 달콤해

누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보통은 좋은 의미로 사용이 된다. 그리워하고 보고 싶고 그런 느낌일 것이다. 그러나 널 기다리며에서 희주는 15년 동안 기범을 기다리는데 그 이유는 제대로 된 죗값을 치르게 하기 위해서이다. 엄마 없이 형사 생활을 하는 아빠와 같이 살던 희주는 자신의 아빠를 죽인 범인이 기범이라는 확신을 한다. 그리고 그를 위해 조용하게 기다린다. 


15년을 기다린 이유는 단 하나!
15년을 기다린 희주의 계획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살인자에게 피해를 입은 가족들은 씻지 못할 상처를 입게 된다. 그 가족 중에 어린아이라도 있을 경우 사고의 발달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사회에 나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희주 역시 성장했지만 직원들의 배려로 경찰서에 잡무를 하는 것을 그곳에 적을 두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항상 가해자는 적은 형량을 받는다.


어떤 피해자도 가해자가 적정한 형량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밝혀진 것은 일부일 뿐이고 그런 범죄를 저질렀다면 적어도 다른 여죄가 있으리라는 생각과 내가 받은 고통 혹은 망자가 받은 고통은 그것을 훨씬 상회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법은 밝혀진 증거만을 두고 판단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법은 정량적인 것이지 정성적인 잣대로 판단하지 않는다. 

사이코패스의 감정은 무채색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색채는 무채색에 가깝다. 색깔이 거의 없는 영화다. 마치 감정선이 없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등장한 느낌이다. 가해자는 가해자대로 피해자는 피해자대로 모두 감정이 없다. 그리고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한다. 이들에게 결말은 모두 정해져 있다. 

널 기다리면은 사이코패스로 등장하는 두 명에 대한 설명이 너무 부족하다. 학창 시절이 잠깐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때만 해도 일반 범쥐에 들어선 사람들이었지만 왜 그렇게 변했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그리고 이들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나오는데 살인자들이 모두 통점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슈는 던지긴 했으나 제대로 된 분석 없이 배우들의 연기에만 의존한 느낌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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