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함은 인생의 위험한 지침서다
분노의 질주는 믿고 보는 시리즈 중 하나다. 자극적인 것으로만 사람을 만족시키는 건 한계가 존재한다. 모든 일에는 빈틈이 있고 때론 엉성함 속에 인정을 하지 못한다면 결국 한계에 도달한다. 분노의 질주에서 표현된 액션은 우연에 우연을 더해 엄청난 행운이 겹치지 않으면 만들어지지 않을 장면들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런 걸 기대하고 영화를 보는 것도 있다. 분노의 질주의 중심은 액션이나 정의감 그런 게 아니라 동지애 혹은 가족애가 자리하고 있다. 가족이나 동지를 위해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스스로를 버텨간다. 이 영화에서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갤 가돗이 다시 부활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점이다.
생각보다 액션신은 생각보다 강화되지는 않았다. 평범하다고 해야 할까. 강력한 자석을 이용한 카체이싱 액션은 볼만했지만 그 외에는 돔의 형제를 중심으로 한 가족애와 오해 혹은 서로에 대한 화해를 중심으로 그려나간다. 분노의 질주를 보면 절대악도 절대선도 없다. 그냥 내 가족을 건드리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와 함께 때려 부수면서 만들어내는 쾌감이 분노의 질주라는 영화다.
영화 속에서 도미닉은 자신과 가장 가까웠던 형제 제이콥 가 사이퍼와 연합(사실 연합한 것도 아니다.)해 전 세계를 위기로 빠트릴 위험천만한 계획을 세운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를 막기 위해 다시 한번 패밀리들을 모으는데 다들 투덜거리면 거 자신의 역할을 한다.
영화는 벌써 9번째에 이르렀다. 속편이 이 정도 나오면 질릴 만도 한데 나름 선방을 하면서 마치 드라마처럼 이어나가고 있다. 전 세계를 위협하는 신기술의 무기들은 어찌나 많은지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저렇게 때려 부셔도 문제가 없다면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현실에서는 저런 식으로 운전하면 아마도 감옥에까지 가지는 않을지 몰라도 주머니는 너덜너덜해질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