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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y 25. 2021

확신과 불신

야은 길재 선생의 생가터를 찾아

이곳을 찾아가면서 드는 생각은 인생은 확신과 불신 사이의 어느 지점을 끊임없이 오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때는 확신에 차서 행동을 했다가도 어떤 때는 스스로를 불신하며 불안해한다. 그래서 자신 스스로도 모른다는 말이 그냥 절로 나오는 것이다. 나 스스로도 알기가 힘든데 다른 사람을 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야은 길재 선생의 생가터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확신과 불신 사이에서 계속 올라갔기 때문이기도 하다. 

야은 길재(吉再, 1353년~1419년)는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고려 말 조선 초의 성리학자로  목은 이색과 포은 정몽주와 함께 고려 말의 삼은으로 불렸다. 역시 구미 금오산의 채미정을 여러 번 가보았기 때문에 야은 길재선생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구미에 자리한 야은 길재선생 생가터는 경북 구미시 고아읍 봉한리 522에 자리하고 있는데 죽림사라는 작은 사찰의 옆길로 계속 올라가야 만나볼 수 있다. 

우선 구미의 작은 사찰인 죽림사의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어느 방향인지는 알겠지만 정확하게 방향이 나오지 않아서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지조 있는 선비가 있어 우뚝 서서 스스로 분발하여 죽음으로써 바른 도리를 지키며 일신의 몸으로 우주의 삼강(三綱)과 오상(五常)의 무거운 책임을 감당하였다. 부귀도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하였고 빈천도 마음을 바꿀 수 없었으며 위세와 무력도 뜻을 굽히지 못하였다는 야은 길재 선생의 생가터는 어디쯤 있을까. 

걷기에는 그렇게 좋지 않은 길을 걸어서 올라갔다. 옆에 무덤도 있고 비도 세워져 있어서 혼동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어떤 비를 찾아야 하는지 혼자서 계속 고민했다. 항상 하던 일이 아니라 매번 새로운 것을 찾고 새로운 것을 보는 것은 때론 난감하기도 하고 힘 빠지기도 한다. 

얼마나 올라왔을까. 드디어 야은 길재선생의 생가터를 알리는 비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를 기리는 비에는 자기에게 능히 지주를 세우지 못하면서 세상에 지주를 세울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무릇 위태롭고 어려운 가운데에서 큰 절조를 세우고 변하지 않은 사람은 모두 평소에 그 본심을 먼저 세워서 잃지 않는 사람인 것이니 바로 길재를 평하고 있다. 

역시 여름에는 수풀이 많이 자라서 접근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뒤에는 축대가 만들어져 있다. 사람은 바로 앞날도 확신할 수는 없다. 보통은 그냥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불신 사이에서 야은 길재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이곳에 생가가 있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해보기는 쉽지가 않다. 그냥 주변에는 임야만 있기 때문이다. 길재는 1353년 구미에서 태어나 당시 관료로 있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개경으로 가서 이색, 정몽주, 권근 등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생가터라고 지정이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구미에서 태어난 야은 길재와 인연이 있었던 곳이다.  난세에도 고려에 절의를 지키고 학문에만 정진한 야은 길재는 사후, 오히려 조선에서 충절(忠節)이라는 시호를 받으면서 충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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