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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노량(露梁)

언젠가는 드러나는 것이 노력이다.

우리는 보통 노량을 이순신 장군이 승전보를 올렸던 곳으로 많이 기억하지만 원래는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에 있는 나루터였다. 이곳은 예로부터 하동군 금남면과 남해군 설천면 사이를 잇는 나루터로 발달했었다. 이렇게 물길이 셌던 곳에 다리가 만들어진 것이 1973년이다. 우리나라 최초 현수교는 1973년 5월 춘천에 만들어진 등선교(登仙橋)로, 철거되어 사라지고 없다. 두 번째 현수교가 남해대교다. 1968년 5월 10일 착공하여 1973년 6월 20일 완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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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순신이 언급되었는데 노량대교로 가기 전에 남해대교의 바로 옆에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의 이순신 백의종군로가 표시가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7백여 미터를 가면 노량대교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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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대교로 가기 전에 자리한 남해대교는 남해군과 하동군에 각각 위치하는 '노량리'를 서로 연결하는 다리다. 강재(鋼材) 주탑(430.76 M/T = Metric Ton)과 주 케이블(504.838 M/T), 보강 형(1,848 M/T)과 앵커리지(452.162 M/T)를 포함하여 붉은색 주탑 도장(塗裝) 페인트(11.593 M/T)가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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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대교를 잠시 살펴보고 노량대교로 왔다. 요즘에는 미래를 대비하는 공부에 대해 생각해보곤 한다. 공정해보는 시험이 있지만 이미 가정환경이나 경제적인 조건에서 차이가 나면 그 차이를 따라가기가 쉽지가 않다.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어 길을 만드는 것이 요즘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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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노량대교의 홍보관은 코로나 19로 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전망대등을 살펴보기로 한다. 노력이란 이런 계단과 같지 않을까. 처음 온 사람이라면 저 끝까지 올라갔다고 해서 멋진 풍광이 있을지 확신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계속 올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드러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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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올라와서 보니 총연장 3.1km의 세계 최초의 경사 주탑 현수교이며, 9년 간의 공사 끝에 2018년 9월 13일 완공, 개통된 경상남도 남해군과 하동군을 연결하는 노량대교가 보인다. 노량대교를 만들기 위해 걸린 시간은 3,000일이 걸렸으며 앵커리지, 주탑, 케이블, 보강거더가 주요 기술로 적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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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가 자리한 곳에 초승달이 보인다. 초승달은 앉아서 쉴 수 있도록 만들어 두었다. 더 앞으로 나아가면 왼편의 남해대교와 오른편의 노량대교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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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앞의 바다에는 나룻배를 타고 남해로 유배 와서 또 다른 흔적을 남긴 영조 때 사람 후송 류의량은 ‘남해문견록’에서 노량의 물결을 순한 물결이라고 했으며 우암 송시열은 이순신이 잠든곳에 ‘산을 박차고 바닷물을 내뿜고, 성난 바람이 구름을 휘몰아가는 기개로 항상 대마도를 짓밟고 왜국을 쳐부수었던 충무공! 이곳은 공의 넋을 모신 곳이도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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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사용하며 매일매일을 노력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노량대교의 전망대를 한 칸씩 밟고 올라가다 보면 보이는 풍광 같은 다른 관점이 보이는 날이 오지 않을까. 지금 많이 공부해서 결과가 안 나타나도, 언젠가는 나타난다. (Non efficitur ut nunc studeat multum sed postea ad effectum veni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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