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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 (露梁)

하동의 금남을 지나가는 탐방길

나루터가 있던 곳에는 고유한 지명이 있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역사 속에서 사용된 지명으로 기억하기도 한다. 우리는 노량을 삼대첩지(三大捷地)의 하나로 기억하고 있지만 하동군 금남면과 남해군 설천면 사이를 잇는 나루터던 곳이 노량이었다. 이곳에서 이순신은 적을 필사적으로 쫓다가 적의 유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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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과 같은 지형을 가진 곳은 물고기들이 많다. 난류와 한류가 섞이는 곳이어서 물고기들의 먹거리가 많은 곳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생각지도 못한 물길이 바다와 바다 사이로 흘러가는 곳이다. 중북부 산지에서 발원한 여러 개의 소하천이 섬진강 하류와 남해로 흘러들어 가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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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리와 남해군 설천면 문의리 사이에 남해대교가 있으며, 이 일대는 한려해상 국립공원에 속하게 된다. 항구에는 개인이 사용할 것 같은 배들이 정박해 있다. 이곳에 정박하기 위해서는 공간 임대료를 내야 하는지 잠시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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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가 늘어서 있는 곳 뒤로 남해대교가 보인다. 이곳에서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대도라는 섬은 하동군의 유일한 유인도라고 한다. 바다와 어우러지는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라고 하는데 아직은 가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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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바다를 가도 볼 수 있는 등대는 배를 타고 가는 사람들에게는 이정표처럼 생각되는 곳이다. 임진왜란의 주요 해전의 배경이 된 곳은 이러한 좁은 해협과 거센 물길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육지와의 사이에서 바다의 폭이 가장 좁아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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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빠져나가서 육지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작은 섬이 된 곳도 보인다. 우측 편에는 김 등을 재배하는 바다어장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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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남기면 그 시기에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있다. 금남면에 새로 조성된 신노량 항의 공원을 만나보기 위해 아래로 내려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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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노량항에는 바다를 배경으로 새롭게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그 중심 조형물은 바로 노량해전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는 난중일기였다. 난중일기(亂中日記)는 지금부터 424~430년 전에 쓰였다. 음력 1592년 1월부터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 전인 1598년 11월까지 약 7년으로, 임진왜란(1592~1598년) 기간을 거의 대부분 포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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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혀 있는 글들을 읽어본다. 임진왜란 당대에는 이 순신 장군 외에도 권율, 원균 같은 장수가 더 있었다. 그러나 기록을 제대로 남기지 않은 두 사람은 그저 알려진 장수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기록은 그렇게 중요하다. 자신의 행적을 기록하다 보면 자신을 계속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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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흐린데도 불구하고 바다 위의 구름이 변화무쌍해 보이기까지 한다. 노량의 바다를 내려다보는 이날의 하늘은 흐렸지만 흐린 것 같지 않은 것은 기분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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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을 바라볼 수 있는 남해로 와서 남해대교의 건너편의 하동을 바라보았다. 기록 혹은 글이라는 것은 사람의 기억이 섬과 섬처럼 끊어져 있는 것을 다리로 연결해주는 효과가 있다. 튼튼한 다리가 섬과 섬을 연결해주면 공간이 살아나듯이 기억도 살아난다. 이순신은 그런 기록을 남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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