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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n 07. 2021

지역 공동체

안동 김 씨가세거 했던사정리

대한민국보다 인구 노령화를 먼저 겪은 일본의 경우 75세를 넘어서도 일하는 비율이 더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어릴 때만 하더라도 60세를 넘으면 퇴직하고 노후를 보내는 삶이 일반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이제는 더 오랫동안 일하고 지역 공동체의 중요성이 다른 형태로 커져가고 있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27만 2000명으로, 30만 명대가 무너졌다. 출생아 40만 명대는 15년간 유지됐지만 30만 명대는 3년밖에 버티지 못했다.

지역마다 가보면 특정 성씨가 집성촌을 이루었다는 세거지 표시를 볼 수가 있다. 이곳 음성군 사정리는 안동 김 씨 세거지였던 곳으로 안동 김 씨를 중심으로 마을을 이루면서 지역공동체를 이끌어갔다. 찾아간 이날은 정자에서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 몇 분이 궁금하신지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현재 만들어지는 인구구조는 30년 뒤의 미래를 결정하게 된다. 

젊은 분들은 대부분 외지로 나가고 지금은 나이가 드신 분들만 남아 있다고 한다. 오래된 고목들이 마을의 입구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어서 마음이 편안한 느낌이었다. 

음성군의 사정리는 음성읍에 속한 지역이다. 안쪽으로 들어가 있는 사정리의 뒤편으로는 가섭산이 자리하고 있다. 음성군 사정리는 동학농민혁명 당시 동학군이 한 달 동안 만 명 정도 생활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큰 활약을 펼쳤던 곳이지만 동학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일본군에 의해 마을이 거의 훼손되고 불에 타버렸는데 안쪽으로 들어가면 자리한 음성 강당말 강당도 같이 불탔었다. 

그냥 놓여 있는 돌처럼 보였는데 재건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할머니의 말에 의하면 50년이 넘는 돌이라고 한다. 마을을 재건했다는 의미처럼 보인다. 

이곳은 강당이 있었기에 강당마을이라고도 부른다. 강당마을의 앞에 운동기구들도 자리하고 있다. 

강당마을의 유래가 빼곡하게 적혀 있다. 이 유래비는 2000년에 쓰인 것이다. 

마을의 안쪽으로 들어오면 음성군 향토문화유적 제20호인 음성 강당말 강당이 자리하고 있다. 강당은 마을 공동체의 중심 공간이나 강의를 실시하는 건물을 말한다. 이 강당말 강당은 일제강점기 당시 사정초등학교 건립 이전에는 초등학교 역할을 했던 곳이다. 동학농민운동(1894)과 을미의병(1895) 당시에 일본군에 의해 불이 탔던 곳으로 현재의 건물 구조는 정면 5칸, 측면 2칸을 갖춘 팔작지붕 집이다. 

조선 후기에 마을의 공회당과 서당을 역할을 했던 공시에 마을공동체의 구심체 역할을 했던 건물이기도 하다. 마을을 돌아보면서 생각된 것은 작아지고 있는 한국의 30년 후의 마을공동체의 역할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과거 같은 형태는 아니지만 어차피 사람들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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