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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n 08. 2021

비수리 (雨述)

중요한 요충지였던 곳의 산성

대전에서는 언제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었을까. 한밭이라고 불렸던 이 지역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살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 회덕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보통 대덕구에 자리한 계족산을 많이 올라가지만 회덕향교 뒤쪽에 자리한 우술산도 중요한 요충지였던 곳이라고 한다. 우술산의 우술의 지명 표기는 삼국시대에 백제의 우술군(雨述郡)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였다. 이는 순 우리말이었던 비수리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대전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공간으로 서구와 유성구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가장 오래된 지역이었던 회덕이 자리했던 대덕구는 그동안 개발에서 벗어나 있었다. 수십 년째 정체돼 있던 지역 내 낡은 주택들이 새롭게 탄생해 주거여건이 개선되기 시작되었다. 최근 정부가 ‘3080+ 대도시권 주택공급방안(2·4 부동산 대책)’ 후속조치로 추진하는 ‘주거재생 혁신지구 선도사업’ 후보지와 대도시권 주택공급 확대를 위한 ‘2차 공공택지 추진계획’ 대상지에 읍내동과 상서지구가 나란히 포함되기도 했다. 

무척이나 더운 날 우술성이 있던 곳을 찾아서 올라갔다. 사람들이 산행을 하지 않는 곳이어서 접근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대전에는 산성 유적이 많고, 산성이라기보다는 보루에 가까운 수준의 성도 많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산성은 계족산성이다. 계족산성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우술성이 자리하고 있다. 

계족산 성내에서 '雨述(우술)', '雨述城(우술성)' 등의 명문 기와가 출토된 바 있어 이를 근거로 계족산성을 백제 시대의 '우술성'으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는데 이는 계족산성의 방어 산성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걷기가 좋지 않은 산길을 올라가다 보면 드디어 이정표가 나온다.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9호. 일명 ‘연축동산성(連丑洞山城)’이라고도 불리는 우술성이 나온다. 이 산성이 위치한 곳은 남쪽으로는 회덕당산(懷德堂山)과 마주보고 있으며 불과 500여미터에 갑천이 있지만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산성의 동쪽 기슭을 통과하는 도로변에서 볼 때에는 불과 60∼70m 정도 높이로 보이는 곳에 축조한 산성으로 흙으로 쌓은 산성이 주변에 있다.  비풍군(比豊郡)은 본래 백제의 우술군(雨述郡)으로 지금의 회덕군(懷德郡)이라고 한 만큼 이 산성은 우술군과 적지 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바로 산으로 넘어서 오면 읍내동은 구 회덕(懷德)이 위치하고 있는 곳으로 이 산성의 동쪽으로 국도와 경부고속도로 및 철도가 통과하고 있으며 경부고속전철도 이 부근을 통과하고 있어서 바로 이곳까지 오기가 쉽지 않다. 

정말 오래된 곳으로 이곳까지 와본 것은 처음이었다. 주거정비가 필요한 공간들도 있어 보인다. 남문지는 너비 3.6m이며 이곳을 나서면 회덕향교(懷德鄕校)가 있는 효자골에 이르게 되는데 회덕향교는 대전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향교중 하나다. 산성의 평면은 거의 삼각형을 이루고 있으며, 둘레는 580m인 우술성의 동남쪽에는 옛날 회덕읍내(懷德邑內)가 위치하고 있어, 이곳을 백제시대 우술군(雨述郡 - 지금의 회덕)의 행정 중심지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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