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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n 12. 2021

자유 (Freedom)

충청남도 보훈관

역사 속에서 한 국가의 혹은 한 영토의 사람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들은 자행되어 왔고 지금도 다른 곳에서 진행 중이다. 영토를 확장하고 제국을 만드는 일은 사람들의 욕구이며 숙명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제국주의 시대 일본은 막차를 타고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차례로 승리하면서 그 이름을 전세게에 알렸다. 그 과정 속에서 한반도는 교두보가 되어버렸다. 일본이 한반도를 바라보는 관점과 대한민국이 일본을 보는 관점은 극명하게 갈릴 수밖에 없다. 

6월은 보훈의 달이기도 하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해이기도 하지만 현충일이 있는 날이기도 하다. 국가의 존립과 주권 수호를 위해서 신체적, 정신적 희생을 당하거나 뚜렷한 공훈을 세운 사람 또는 그 유족에 대하여 국가가 적절한 보상을 하는 것이 보훈이다. 

미국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국가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180만 명이 넘는 군인들을 파병한 국가이기도 하다. 당시 파병된 군인들의 평균 나이는 17~20세에 불과했다. 

충청남도 도청이 자리한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보훈관이 있는데 문을 닫기 전에 방문을 해보았다. 이곳을 가이드해주시는 분이 첫 번째로 소개해주신 분은 김구였다. 김구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이곳의 시스템은 디지털화가 잘 되어 있어서 보기 편하게 되어 있었다. 

을미사변이 일어나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살해되자 충격을 받고 1896년 2월 귀국하여 안악(安岳)으로 오는 도중 치하포(河浦)에서 일본군 중위 쓰치다[土田壤亮]를 때려죽인 뒤 집에서 은신중 체포되었으며 영화 속에서도 잘 그려졌다. 

미국인들은 혹은 영국인들은 한국전쟁을 승리한 전쟁이라고 기억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UN으로 참전하였기에 미국인들은 2차 세계대전의 참전국처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자유라는 의미하라를 위해 참전한 사람들이 많았다. 

역사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이야기해주고 있다. 150년 동안의 역사 속에서 한반도는 많은 것을 경험하였다. 역사를 제대로 아는 사람들은 많지가 않다. 역사는 그냥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사람이 걸어온 길의 가르침이다. 

열정적으로 많은 것을 보여주시려고 했던 분은 안중군 의사를 디지털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그 시대를 기억할 수는 있지만 체감하기란 쉽지가 않다. 당시 일본의 열웅과 같은 대접은 받았던 이토 히로부미의 모습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안중근 의사가 어떤 사람을 저격하려고 했는지에 대한 관점이랄까. 

자유를 지향했다고 하더라도 전쟁은 상관없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만들어낸다. 일반인 1명의 희생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3명의 군인들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한다. 

보훈(報勳)은 ‘공훈에 보답하다’라는 의미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있듯 현실에 안주해 자만하면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는 노력한 만큼 대가를 지불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답을 생각할 필요는 있다. 적당히 살아가는 것이 일상이 된다면 보훈은 의미가 없을 수 있으며 이 사회를 나아가게 하는데 한계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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