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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n 20. 2021

사람의 서재

순창 설진영 서실

자신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자신이 걷고 싶은 길을 걸으면서 돈을 벌면서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 당시 사회 시스템에 순응하면서 사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힘들다고 하지만 어렵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일제강점기가 진행되면서 일본의 문화가 지속되리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다수였던 그때 창씨개명령에 반대하며 자신의 서실 앞 우물에 몸을 던져 순국한 사람이 순창의 설진영이다. 

서실이라고 하는 것은 서재와도 연결성이 있다. 보통의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공부하라고 말은 하면서도 스스로가 공부하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사람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먼저 행하는 것이다. 

설진영 서실은 1920년에 세운 것으로 설진영은 1895년 송사 기우만 선생과 함께 의병을 조직하여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으나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1910년에 한일 강제합병이 되면서 아미산 남쪽인 이곳에 서실을 열고 학문 연구와 애국지사 배출에 온 힘을 다했다고 한다. 

사랑채조차 지닐 수 없는 가난한 선비는 사랑방의 한쪽에 벽장이나 다락을 만들고 귀한 서책을 보관하여 살았다고 한다. 서재는 자신의 생각을 담는 공간이며 자신이 나아갈 길을 스스로 계속 돌아보는 공간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모내기가 모두 끝이 났다. 이제 좀 있으면 해가 가장 길다는 하지가 온다. 하지(夏至)는 24절기 가운데 열째 절기로 이날까지 모심기를 안 하면 농사가 늦어지므로 서둘러 모내기를 해야 했었다. 순창과 같은  전라도 지방에서는 마을 여인네들이 모두 산에 올라가 일제히 오줌을 누면서 비를 빌기도 했었다. 

설진영 서실로 들어가 본다. 설진영 서실은 왼쪽부터 방과 방, 그리고 대청으로 이어지며 방과 대청 사이는 분합문(分閤門)이 있어 오른쪽 3칸은 필요시 모두 터서 한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설진영 서실(薛鎭永書室)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민도리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서실은 순창 설씨(淳昌薛氏) 후손인 설상환이 소유,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배움 자체를 시작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배움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 하나를 들어 열을 알자고 하는 것이 공부인데 하나로 인해 둘도 모르게 된다. 알량한 공부로 남에게 자랑 못해 안달이 나서 아는 체 하다가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나면 기세를 북돋워서 오기를 부린다. 깨달은 사람은 실제로 그걸 행할 수 있는 사람이다. 설진영이라는 사람은 자신의 앎을 실제로 행동으로 보여주었던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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